사우디아라비아가 인권 침해 등으로 실추된 자국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글로벌 홍보 기업의 컨설팅을 받고 있다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홍보·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에델만은 지난달 사우디의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서치 비욘드’(Search Beyond)라는 5개년 계획을 사우디 정부에 제안했다. 계획의 목표는 국제사회로부터 사우디가 ‘새롭고 현대적인 관광·문화의 나라’라는 인식을 얻는 것이다.
폴리티코가 입수한 제안서에 따르면, 에델만은 사우디가 세계적인 문화 행사를 열거나 화려한 스포츠 행사를 주최하는 방안 등을 거론됐다. 또 할리우드 셀럽(유명인)이나 인플루언서 등을 동원해 사우디 내에서 영화를 찍거나 토크쇼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방안 등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인기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가 진행하는 시사 토크쇼 ‘더 데일리 쇼’를 사우디 곳곳에서 주최하거나 미국 유명 음악축제 ‘코첼라’와 일종의 협력 관계를 맺고, 골든글로브 스타일의 연예 시상식을 사우디에서 여는 식이다. 또 음악 채널 MTV나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 세계적인 문화 기관과 손을 잡는 등의 방안도 제시됐다.
중동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단체 ‘중동민주주의 프로젝트’의 세스 바인더 인권국장은 사우디의 이 같은 시도에 대해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유명 인사들을 데려와 콘서트를 열고, 축구 클럽을 사들임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하려 한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최근 사우디 방문은 이러한 ‘완전한 갱생’을 위한 일종의 최종 단계”라고 지적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납치·피살한 배후자로 지목됐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 ‘주먹 인사’를 나누고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논의했다.
미국에서 왕실 비판 칼럼을 써오던 워싱턴포스트의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결혼 관련 서류를 발급받으러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잔혹하게 살해됐다. 그를 눈엣가시로 여겨왔던 빈 살만 왕세자가 사건 배후로 지목되며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건 이후 한때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날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자 ‘주먹 인사’를 건네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한편 사우디는 에델만과의 계약 이외에도 국제적인 이미지 개선을 위해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신생 골프 리그인 LIV를 출범시켜 미국프로골프(PGA) 스타 플레이어들을 빼내려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사들이기도 했다.
다만 에델만은 제안서에서 사우디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여성 인권 및 종교의 자유 등에 관한 문제 등이 사우디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사우디 정부는 이 같은 컨설팅 비용으로 에델만에 연간 78만7000달러(약 10억원)를 지급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에델만은 사우디와의 계약 내용을 설명해 달라는 폴리티코의 요청에 대해 “고객과의 비밀 유지 계약”을 이유로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