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전 해상자위대원에게 피습돼 숨진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전후(戰後) 태생 첫 총리’이자 ‘최장수 총리’로 일본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친조부부터 3대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1993년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야마구치 중의원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계에 입문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내각에서 2001년 관방부장관으로 발탁된 뒤 정치적 입지를 넓혀왔다.
아베는 2002년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해 방북, 일본인 납북 피해자들이 귀국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6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한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총리에 올랐다. 전후 최연소 총리였다. 취임 직후 미국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등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하면서 1년 단명 정권으로 끝났다.
절치부심한 아베는 2012년 2차 집권에 성공한 뒤 7년 8개월간 장기 집권하며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일본을 되찾겠다”라는 명쾌한 구호 아래 일본 사회 개혁에 나섰다. 이때 도입한 게 과감한 경기 부양책 아베노믹스다. 양적 완화, 재정 지출 확대, 기업 체질 개선 등 이른바 ‘세 가지 화살’을 쏘아 올린 결과 일본 사회와 경제가 모처럼 활력을 되찾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베 취임 당시 8000대에 머물러 있던 닛케이225 지수(일본 코스피 지수)는 그가 퇴임하기 전 2만3000대까지 올랐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딛고 일어난 일본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며 ‘2020 도쿄 하계 올림픽’ 을 추진, 유치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외조부 기시 전 총리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일본의 전후(戰後) 체제 변혁을 일생의 정치 과업으로 삼았다. 재임 기간 자위대(군대) 보유를 헌법에 명기하기 위한 개헌 필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2015년엔 해외에 자위대를 파견해 전쟁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집단적 자위권’ 개정에도 성공했다.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사실상 미국을 의미)가 공격받을 때 일본도 무력으로 개입해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막는 장애물로 일본의 ‘자학사관’과 이에 입각한 교육을 지목, 일본의 전쟁 과오를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교과 과정을 수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아베가 일본 사회를 우경화하고,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을 깊게 했다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됐다. 한국·중국과도 잦은 갈등을 빚었다. 특히 아베의 2차 집권기 후반은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양국이 맺은 위안부 합의가 2017년 문재인 정부에 의해 사실상 파기되고,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놓자 아베는 2019년 7월 반도체 관련 부품 등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행했다. 한일 간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경제적 보복을 취한 것으로 전례 없는 조치였다. 이후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반면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일본의 영향력을 넓히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정책을 제창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는 ‘브로맨스(남자들 간의 독특한 우정)’로 불릴 정도의 돈독한 관계를 구축했다.
퇴임 후에도 ‘레이와(令和·일본 현재 연호) 시대의 야미쇼군(暗將軍·막후 실력자)’ ‘자민당의 킹메이커’ 등으로 불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를 따르는 아베파 의원만 해도 100명에 가깝다. 대중 인지도와 인기도 일본 정치인 중 최고여서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도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지원 유세를 다녔다. 사건이 발생한 이날도 오사카에 기반을 둔 정당 ‘일본유신의회’가 선전하는 나라현 나라시에서 자민당 후보를 응원하고자 연단에 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아베는 전후 체제에 머물러 있는 일본을 개혁하고, 일본을 다시 부강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던 큰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에선 역사적 이슈로 갈등한 사실만 널리 알려져있지만 아베는 한·일 우호 관계 구축이 갖는 중요성과 의의 역시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한국에 애증을 모두 느끼는 정치인이었는데 아쉬운 마음”고 평가했다. 아베는 지난 4월 방일한 한국 정책협의단과의 면담 당시에도 아내 아키에 여사가 최근 한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고 소개하며 “한일 관계가 더 좋아지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을 건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