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오른쪽)과 만난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2월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과 함께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방한(訪韓)은 사실상 불발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2월 4일부터 20일까지 열리고, 이어서 장애인 올림픽인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이 오는 3월 4일부터 13일까지 예정돼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 기간 중 시진핑 총서기의 해외순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기간 중인 3월 9일에는 한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자연히 문재인 정부가 오매불망 학수고대했던 임기 내 시진핑 총서기의 방한은 사실상 무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폐막 직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만난 전례가 있지만, 당시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평가다. 게다가 오는 3월 9일 대선 직후부터는 문재인 대통령보다는 새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원회로 국정의 무게추가 옮겨가는 만큼, 시진핑 총서기가 방한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마주앉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자연히 시진핑 총서기의 방한은 오는 3·9 대선에서 당선된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오는 5월 10일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2차례 방중(訪中)에도 불구하고, 카운터파트인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방한을 이끌어내지 못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중 성사된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역대 대통령 임기 중 중국 최고지도자의 방한이 성사되지 못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를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다.

김대중 이후 첫 방한 패싱

김영삼·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때는 모두 한·중 정상 간 상호 교차방문이 이뤄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중인 1995년에는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6·25전쟁 이후 역대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중인 2005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부산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해 노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중에는 베이징올림픽(2008), 상하이엑스포(2010), G20서울정상회의(2010), 서울 핵(核)안보정상회의(2012), 한·중·일 정상회의(2012) 등 한·중 양국에 국가적 행사가 많았던 터라 전례 없이 활발한 한·중 간 셔틀외교가 이뤄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세 차례 중국을 찾았고, 후진타오 전 총서기가 국빈방문과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세 차례 한국을 찾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중인 2014년에는 시진핑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서울을 국빈방문했다. 당시 시진핑 총서기의 방한은 2012년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 이래 전통적 우방인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은 것으로,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각인됐다. 시진핑 총서기의 집권 후 첫 북한 방문은 이보다 5년이나 늦은 2019년에 성사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12월 방중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지난 2019년 12월에도 중국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에서 시진핑 총서기와 마주앉았다. 응당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내려온 한·중 양국 최고지도자의 상호 교차방문 관례에 따라 다음 차례는 시진핑 총서기가 한국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거듭된 방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총서기는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을 외면해 왔다. 시진핑이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자격으로 방한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4년이 마지막이다. 시진핑 총서기의 전임자인 후진타오 전 총서기가 재임 중 무려 4차례나 한국을 찾아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과 마주앉았던 것과도 극명히 대비된다.

후진타오, 재임 중 4차례 방한

특히 2020년 1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武漢)을 시작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된 이래 두문불출 중인 시진핑 총서기의 상황으로 봤을 때, 오는 5월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직후에도 한동안 시진핑의 방한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진핑 총서기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20년 1월 미얀마를 국빈방문한 것을 마지막으로 중국 국경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정상외교는 화상으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등 각국과 외교현안들이 쌓여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해외순방지로 한국을 선택할 가능성도 매우 낮은 편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오는 10~11월경에는 시진핑 총서기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될 제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가 예정돼 있어 방한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자연히 오는 3·9 대선에서 당선된 새 한국 대통령은 5월 10일 신정부 출범 이후에 먼저 중국을 찾아 시진핑 총서기와 만나는 소위 ‘알현외교’ 형식으로 한·중 간 외교관계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오는 연말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전임 지도자들의 관례에 따라 용퇴하고 새로운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등장할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 경우 한·중 간 정상회담은 내년으로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진다. 비록 올해가 한·중 수교 30주년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새 지도자와 중국의 새 지도자가 만나는 것이 더욱 실질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중 수교 10주년인 2002년과 한·중 수교 20주년인 2012년에도 한·중 간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모두 그 이듬해인 2003년과 2013년 한국 대통령이 중국을 찾아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만나는 형태를 취해왔다. 2003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방중해 후진타오 당시 총서기와 만났고, 2013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을 찾아 시진핑 총서기와 마주앉았다.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방중한 노태우 대통령이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 대신 명목상 국가주석이었던 양상쿤을 만나는 데 그치면서 비정상적인 한·중 정상외교가 시작됐다”며 “비록 양국 간 국력 차이가 크고 북한 문제가 걸려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 대통령이 항상 중국을 먼저 찾는 관례가 고착화될까 적잖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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