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국제사회는 ‘떠오르는’ 중국이 아니라, 현재 ‘정점(頂點)’을 찍고 있는 중국이 곧 쇠퇴기를 맞으면서 미국과 더 큰 갈등을 벌일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권위 있는 외교 전문지를 통해서 제기됐다. 존스홉킨스대의 국제정치학자인 할 브랜즈 석좌교수와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정치학 교수는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쇠퇴하는 중국이 문제’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흔히 미‧중 관계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패권국 스파르타와 신흥 강국 아테네가 벌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갈등 구조에 비교된다. 당시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을 기술하면서 “아테네의 파워가 점점 커지면서 스파르타는 놀랐고 결국 전쟁은 불가피했다”고 했다. 하버드대 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은 기존 강대국이 신흥 강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전쟁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불렀다. 이후 미국에선 “패권국 미국은 떠오르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좀 더 넓혀 전쟁의 위험성을 낮춰야 한다”는 유의 조언이 많았다.
그러나 브랜즈 등 두 학자는 “투키디데스 함정 이론은 실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지도 않았고, 발전 궤도에서 이미 정점을 찍고 있으며 곧 수그러들 위기에 처한 중국의 현 위치도 잘못 진단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강대국들 간 전쟁은 더 이상 발전‧확대를 기대할 수 없는 신흥국이 ‘도전의 창(窓)’이 닫히기 전에 패권국에 덤비면서 일어난다”며 “해양군사력에서 밀리게 된 아테네, 1914년 1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 지금의 중국이 모두 같은 처지”라고 했다.
즉, 신흥 강대국은 파워가 계속 확장할 때에는 중국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힘을 기른다)’처럼 패권국에 맞먹을 수 있을 때까지 ‘대결’을 미룬다. 그러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패권국과 동맹 세력에 포위되고 쇠퇴기를 앞둔 시점에 이르면, 더 늦기 전에 현재 움켜쥘 수 있는 것을 확보하려 들어 ‘전쟁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브랜즈와 베클리 두 교수는 “현재 미국이 우려해야 하는 것은 수퍼 파워를 꿈꿨지만 정점을 찍어 국가적 야망과 국민적 기대를 더 이상 맞추지 못하면서도, 쇠퇴의 고통스러운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중국”이라고 했다.
두 교수는 중국이 수퍼 파워의 야망을 품게 했던 동력(動力)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2000년대 초 중국은 식량‧식수‧에너지 자원에서 거의 자급자족 국가였다. 또 노동 연령층 10명이 65세 이상 1명을 먹여 살리는 이상적인 인구구조였다. 주요 선진국 경제에서는 이 비율이 5대1에 가깝다. 그러나 2000년대 말부터 이 동력은 멈추고 있다. 2050년이 되면, 노동 연령층 인구 2~3명이 65세 이상 1명을 부양하게 된다. 중국 정부는 27일 “비의료적 낙태를 엄격히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의 GDP는 미국의 70%이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미국을 앞지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성장은 10년 전부터 김이 빠져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도 2007년 14% 성장에서 2019년엔 6%가 됐다.
중국은 위구르족 인권 유린, 홍콩 민주화 탄압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은 화웨이와 같은 중국의 테크 기업에 대해 ‘옥죄기’를 하고 있다. 또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와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협의체) 등을 결성해 중국을 압박한다. 유럽연합(EU)과 영국도 중국을 “체제적 경쟁자”로 규정하며, 수시로 남중국해로 전함과 항모를 보낸다.
브랜즈와 베클리 교수는 “중국은 ‘기회의 창’이 곧 닫힐 운명을 맞고 있는 수세에 몰린 강대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점을 찍는 중국은 앞으로 10년 동안 자신의 운(運)이 사라지기 전에 전략적 성취물을 얻기 위해 더 대담하고 변덕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두 교수는 “미국은 그동안 떠오르는 중국과 맞서야 했지만, 이제는 쇠퇴하는 중국이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기술하면서 “아테네의 파워가 점점 커지면서 스파르타는 놀랐고 결국 전쟁은 불가피했다”고 했다. 하버드대 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은 기존 강대국이 신흥 국가의 부상을 견제하다가 전쟁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명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