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 시각)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친정부 시위에서 연설하는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 /연합뉴스

17일(현지 시각) AP통신은 쿠바 정부가 수도 아바나에서 주최한 친(親)정부 시위에 수천 명이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집회는 지난 11~12일 전국 40여개 도시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반(反)정부 시위에 대항한 ‘맞불 집회' 성격으로 개최됐다.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이날 집회에 참석해 “세계가 쿠바에 대해 보고 있는 것은 거짓”이라며 반정부 시위의 의미를 폄하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 측의 일주일 전 시위 진압 영상이 퍼지면서 양측의 갈등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쿠바엔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파이낸셜타임스는 17일 ‘공산주의 마지막 보루’ 쿠바에서 27년 만에 벌어진 저항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공산 혁명의 심장에서 자유를 외치다

11일 아바나의 국회의사당 주변에 몰렸던 인파는 “리베르타드(Libertad·자유)”를 외치며 행진했다. 쿠바 공산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가 했다는 말, ‘승리의 그날까지 영원히(Hasta la victoria siempre)’가 적힌 이곳에서 자유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수만 명의 인파가 쿠바 전역 40개 도시에서 국영 상점을 약탈하고 경찰차를 전복시켰다. 대중들은 온라인 공간에 #viva_cuba_libre(자유 쿠바 만세) #sos_cuba(쿠바를 구해달라) 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반정부 게시물을 올렸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11일(현지 시각)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 정부를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경찰 차량을 뒤집어엎고 있다. /AFP 연합뉴스

쿠바 정부는 이 시위로 2016년 피델 카스트로 사망 이후 첫 중대 고비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형제간 세습이 이뤄졌던 쿠바에서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도 지난 4월 공산당 총서기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카스트로 집권기는 막을 내렸다. 현재 국정은 후계자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이끌고 있다. 이번 시위는 쿠바의 정체성을 위협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같은 공산 국가 중에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중국·베트남과 달리 쿠바는 국가 주도 공산경제체제를 고수하고 있지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 엘카노 연구소의 카를로스 말라무드 선임연구원은 “쿠바에선 카스트로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 ‘전면 무상'이 지나간 자리, 관광업으로 땜질하다

수만 군중이 시위를 일으킨 건 ‘식량'과 ‘의약품' 부족 때문이다. ‘식량 배급' ‘무상 교육' ‘무상 의료'로 대표되는 쿠바 특유의 공산주의 사회·경제 정책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형 피델의 뒤를 이어 집권한 라울 카스트로는 ‘체제 내 개혁'을 시도했다. 개혁의 핵심은 ‘전면 무상’ 대신 ‘소규모 자영업 육성'이었다. 라울은 택시·렌터카·민박집·민영 식당·이발소·청소업·건설업 등 관광업 유관 분야 181개를 민영화했다. 그 결과 2008년 15만명이던 자영업자는 2015년 50만명을 넘어섰다. 관광객도 늘어 관광업은 쿠바에 매년 25억 달러(2조 8800억원) 이상의 외화를 안겨 주었다.

◇코로나 발발, 부적절한 화폐 개혁 타이밍

하지만 2020년 창궐한 코로나는 쿠바 경제를 다시 위기로 몰아넣었다. 쿠바 경제를 지탱하던 관광업이 각국의 봉쇄 조치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올해 1~5월 쿠바를 찾은 관광객은 8만 8000명으로, 전년동기대비 9%에 불과하다. 이 여파로 쿠바는 심각한 외화 부족 상태를 겪고 있다. 오랫동안 자부심의 원천이던 공중 보건 시스템마저 붕괴 위기다. 쿠바의 일일 코로나 확진자 수는 연일 최대치를 갱신하며 17일 기준 6279명을 기록했다. 총 확진자 수도 28만 1887명에 달한다. 코로나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 역시 부족한 상태다. 뉴욕타임스는 “쿠바 공산당을 원조해 연명시킨 소련이 붕괴한 1990년대 초처럼 식량 배급줄이 길게 늘어서고, 항생제와 아스피린 등 기본적 의약품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연이은 경제 정책의 실패도 엎친데 덮친 격이다. 쿠바 정부는 지난 1월 위기를 타개하고자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쿠바에서는 현지인들이 쓰는 일반 페소화(CUP), 달러와 1대1로 비율로 바꿀 수 있는 외국인용 태환페소(CUC)가 함께 사용하는 이중 통화제도를 운영해왔다. 그런데 쿠바 정부는 복잡한 화폐제도를 간편화한다는 취지로 CUC를 없앴다. 달러 대비 25분의 1 가치에 불과한 CUP만 남게 되면서 쿠바 화폐의 가치는 폭락했고, 상품 가격은 폭등했다. 쿠바 정부는 충격을 덜겠다며 새해부터 최저임금을 월 400페소(약 1만 7000원)에서 2100페소로 인상했다. 그러자 전기와 교통요금도 줄줄이 오르기 시작했다. 콜롬비아의 경제학자 파벨 비달은 “앞으로 몇 달 안에 쿠바 물가는 500%에서 900%까지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