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의 미군 철수가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서부의 하예드 울 슈하다 고등학교 인근에서 8일 저녁(현지시간)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55명이 숨지고 150여명이 다쳤다고 로이터 통신이 현지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번 테러는 20년간 주둔했던 아프간 주둔 미군을 오는 9월 9·11 테러 20주기 전까지 전원 철수하겠다는 조바이든 행정부 결정에 따라 이달부터 공식 철군이 시작된지 여드레만에 벌어진 테러다. 이에 따라 미군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주둔군 철수 뒤 아프가니스탄이 내전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지 방송 화면과 외신 사진에는 흰 천을 씌운 희생자 시신이 바닥에 임시 안치돼있고, 학생들의 책과 가방이 흩어져 있고, 핏자국이 보이는 등 사건 현장의 참혹한 모습이 잡혔다.

8일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고등학교 사건 현장에서 부상자가 들것에 실려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테러 공격의 희생자 대부분은 여학생이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테러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이번 테러의 주체로 탈레반을 지목했다. 탈레반은 1996년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장악한 뒤 2001년 아프간 전쟁이 벌어지면서 미군에 의해 축출됐다. 집권 기간 여성들에게 전신 가리개 부르카를 씌우고 일체 사회활동을 금지하는 등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탈레반은 이를 부인하면서 테러의 주체로 이슬람국가(IS)를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를 장악했다 쇠퇴한 IS도 역시 이슬람근본주의를 주창하며 테러와 인질참수, 여성납치 및 성 노예화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8일 아프가니스탄의 고교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테러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시신이 임시 안치돼있다. 희생자 대부분은 여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AP 연합뉴스

차량 공격이 일어난 고교는 3교대로 여학생과 남학생이 수업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2교대는 여학생들의 수업시간이었고 부상자들은 대부분 여학생이었다고 나지바 아리안 아프간 교육부 대변인은 로이터에 말했다. 현재 테러 주체를 자임하는 단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벌어진 이번 테러로 인해 미군 철수 후 아프가니스탄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지난 4일 전략폭격기 B-52를 중동 카타르에 배치하며 중동 지역 B-52 기를 6대로 보강한 데 이어 항공모함 철수 미군의 엄호를 위한 일시적인 지상군 파병도 준비 중이었다. 미군이 공언했던 “미군의 안전하고 질서 있는 철수”의 일환이다. NATO군도 미군과 보조를 맞춰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8일 발생한 테러로 얼굴 등에 큰 부상을 입은 한 학생이 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러나 철군이 실제 이뤄지게 될 경우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최대 절반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탈레반의 공세가 본격화돼 다시 아프가니스탄이 수렁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정부군을 향한 아프가니스탄의 공세는 부쩍 강화되는 상황이었다. 지난 4일에는 탈레반이 마약 제조용 양귀비 재배지역으로 알려진 남부 헬만드주 주도인 라슈카르가와 남동부 가즈니, 그리고 남부 칸다하르를 포함해 최소한 7곳에서 정부군을 상대로 대규모 공세를 벌였다. 특히 공격을 받은 헬만드 지역은 최근까지 미군이 주둔하다 기지를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넘겼는데, 기다렸다는 듯 탈레반이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여고생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테러에 앞서 지난 3일에는 남서부 파라주의 정부군 기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7명이 숨졌고, 지난달 30일에도 로가르주의 차량 테러로 30명 가까이 사망했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VOA)은 전했다.

8일 발생한 테러로 부상을 입은 여학생이 긴급 후송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간 철군 발표 후 미군과 NATO군이 떠나면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베트남전 종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전황악화와 국내 여론 악화 등 악재에 처한 미군이 군사적 적대세력과 ‘평화협정’을 맺고 철군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베트남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의 전개 과정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의 경우 철군한 미군이 다시 개입하지 않을 것을 확신한 북베트남이 대대적인 군사적 공세를 펼친 끝에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을 함락시키며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흡수통일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는 맥스 부트는 “만일 바이든이 평화협정을 준수한다며 계획대로 철군한다면, 수백만명의 평범한 아프간 사람들은 동맹들로부터 버림받은 남베트남과 같은 운명에 처해지게 될 것”이라며 “카불의 함락은 사이공의 함락만큼 끔찍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