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 시각) 공개된 CNES 위성사진.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막고 있는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의 모습이다. 에버기븐호는 대만 해운업체 에버그린이 장기용선하고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다. /AFP 연합뉴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상 교역의 핵심 통로인 이집트 수에즈 운하가 초대형 화물선에 가로막히면서 국제 해상 물류가 타격을 입고 유가까지 올랐다. 당초 하루 이틀 정도면 해당 선박을 예인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예인 작업이 쉽지 않아 운항 재개까지 수주일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5일(현지 시각) 현재 수에즈 운하 인근에는 150척 이상의 선박들이 통행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23일 오전 7시 40분쯤 ‘에버기븐’이란 이름의 파나마 선적 컨테이너선이 수에즈 운하 남쪽 입구 인근에서 돌연 멈춰 섰다. 길이 400m, 폭 59m, 22만t 규모의 이 선박은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로 향하는 중이었다. 뱃머리가 한쪽 제방에 박혔고, 선미(船尾)가 반대쪽 제방에 걸쳐져 폭 약 280m인 운하가 가로막혔다.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은 “에버기븐호가 강풍과 먼지 폭풍 속에서 조향 능력을 잃으며 운하를 가로막았다”고 밝혔다.

SCA는 사고 직후 예인선을 투입해 다른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선체를 수로 방향으로 바로 돌리려고 했지만, 사고 선박의 규모가 크고 일부가 모래톱에 박혀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해운 수요 폭증으로 에버기븐호 적재량이 거의 꽉 차 있는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에버기븐호에는 컨테이너를 2만 개 이상 실을 수 있는데, 적재량이 100%에 가깝다고 영국 해운 전문지 로이즈리스트는 전했다.

앞서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은 24일 에버기븐호의 선체 일부가 다시 물에 떴고 조만간 선박 통행이 재개될 것이라 보도했지만, 운하 통과 서비스 업체 GAC는 이 보도가 ‘부정확한 정보’라고 했다. GAC는 25일 고객사들에 ‘예인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풍랑과 선박 규모가 작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지를 했다. 이날 전 세계 선박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베슬파인더’에 따르면 지난 24시간 동안 에버기븐호의 위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운하의 수위가 높아지는 28~29일에 에버기븐호를 빼내지 못하면 2주가량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전망도 있다.

컨테이너선 좌초로 뱃길 막힌 수에즈운하

수에즈 운하 선박 정체가 장기화할 경우 원유·가스 수송 등을 비롯한 글로벌 교역에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에즈 운하는 국제 해상 물류의 핵심 통로로, 전 세계 컨테이너 선적량의 30%, 상품 교역량의 12%가 이곳을 통과한다. 지난 한 해 약 1만9000척, 하루 평균 51.5척이 이 운하를 통과했다.

국제 유가는 이번 사고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국제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10%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24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5.9%(3.42달러) 오른 61.1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덴마크 해운 컨설팅업체 시인텔리전스의 닐스 마드센 부사장은 “수에즈 운하 봉쇄가 3~5일 더 이어진다면 심각한 글로벌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이 사고는 (원자재 등의) 공급 부족을 악화시켜 (상품의)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선박 전문가들을 인용해 “앞으로 48시간 이내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일부 해운회사는 선박들을 아프리카 대륙으로 우회시킬 텐데 이 경우 항해 기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 늘어난다”고 전했다.

국내 해운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HMM(옛 현대상선) 관계자는 “유럽에서 돌아오는 선박 중 1척이 수에즈운하 입구 근처에서 통행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다음 주에도 유럽행 1척, 아시아행 1척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예정”이라고 했다. 해운 업계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하면 해운 운임도 출렁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