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출신으로 미국과 영국, 호주에 수십 개의 신문·TV , 출판사 등의 미디어 그룹을 구축한 루퍼트 머독이 11일로 90세를 맞는다. 그는 그가 보유한 두 개의 미디어 기업인 뉴스코프(News Corp.)의 이사회 의장이고, 폭스뉴스가 주축인 폭스코퍼레이션에선 공동 의장이다. 그는 2001년 70세가 됐을 때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17만5000 시간 가량 더 살 수 있고, 이 중 7만~7만5000시간은 생산적으로 쓸 수 있겠죠. 그러니 앞으로 이 시간을 잘 써야겠죠”라고 했다.

17만5000시간에 해당하는 이후 20년, 머독은 많은 일을 벌였다. 2007년엔 월스트리트저널이 속한 다우존스컴패니를 50억 달러에 밴크로프트 가문으로부터 사들였고, 2016년 이후 폭스뉴스를 미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뉴스채널로 만들었다. 폭스뉴스의 순이익률은 50%를 넘는다. 그런가 하면, 그가 보유한 168년 역사의 영국 타블로이드판 일요신문인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는 기자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전화를 도청하고 경찰에 뇌물을 준 것이 드러나 결국 폐간됐다. 이후 그는 자신의 미디어 기업을 신문사 중심의 뉴스코프와 영화제작·필름·TV 중심의 폭스코퍼레이션으로 분리했다. 2019년에는 폭스코퍼레이션에 속한 영화사 21세기폭스사와 보유한 영화·만화영화·드라마 등의 콘텐츠 등을 무려 710억 달러를 받고 디즈니에 팔았다. 지난 2월엔 10년이 넘는 싸움 끝에, 구글과 같은 IT 공룡들로부터 뉴스코프의 뉴스를 노출·공유하려면 수수료를 내게 하는 법을 호주 의회에서 끌어냈다.

2016년 3월 당시 85세의 머독은 과거 영화배우-모델이었던 제리 홀(현재 64세)과 런던에서 결혼했다.

머독은 이 기간에 또 새로운 사랑을 만나, 중국계 아내 덩원디와 이혼하고 2016년 가수 믹 재거의 아내였던 제리 홀과 생애 네번째 결혼을 했다.

◇불투명한 미래… ‘유업’이란 단어 좋아하지 않아

머독은 ‘유업(legacy)’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머독이 주변에 ‘조각들이 무너져 내릴 곳에 무너지라고 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자신이 떠난 뒤, 누가 이 거대한 미디어 자산을 하나로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한 측근은 “이제 머독은 과거처럼 자의적으로 마구 흔들 에너지가 없어, 간신히 2차 대전은 살아남았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맞은 전후 대영 제국과도 같다”고 비유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폭스 코퍼레이션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폭스 뉴스는 여전히 보수층의 사랑을 받지만, 작년 미국 대선을 치르면서 많은 타격을 받았다. 트럼프 열렬지지층은 이제 ‘뉴스맥스’ ‘원아메리카뉴스(OAN)’과 같은 주변부 TV 채널로 옮아갔고, 전통적인 보수 시청자와 투자자들은 반대로 폭스의 ‘대선 부정’ 주장에 반발해 떨어져나갔다. 폭스뉴스의 시청률은 현재 작년 대비 30% 감소했다. CNN과 좌파인 MSNBC가 61%, 23% 증가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런가 하면, 폭스뉴스로부터 ‘대선 결과 조작의 ‘주범’ 누명을 받았던 계수기·소프트웨어 제조사인 스마트매틱은 폭스코퍼레이션에 27억 달러짜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뉴스코프 부문에선 온라인 유료화에 성공한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선전(善戰)하고 있지만, 더 타임스·더 선·뉴욕포스트·WSJ·배런스·오스트레일리안 등 수십 개의 뉴스 매체를 보유한 뉴스코프의 시가총액은 144억 달러(약16조3800억 원)에 그친다. 각 뉴스매체가 지닌 명성과 역사, 가치의 합(合)에는 한참 모자란다. 그래서 일부에선 또 폭스코퍼레이션의 뉴스 TV 채널과 스포츠 채널이 또다시 분리돼 매각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분 가진 자녀 4명은 반목

루퍼트 머독과 4명의 자녀는 가족 트러스트를 통해 뉴스코프와 폭스코퍼레이션 지분의 40%를 보유하고 있다. 의결권은 머독 4표, 각 자녀 1표꼴로 나뉜다. 머독이 중국계 세 번째 아내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은 지분이 없다. 가장 유력한 후계자는 폭스코퍼레이션의 CEO이자 뉴스코프 공동 의장인 장남 라클란(49)이다.

그러나 위기 시 기업을 진두지휘한 것은 아버지 루퍼트 머독이었다. 미 대선 때 폭스 뉴스가 트럼프의 공격으로 휘청거릴 때에, 폭스뉴스를 다시 우익 기반으로 돌려놓은 것도 아버지였다.

루퍼트 머독이 이룬 거대 미디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네 자녀.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프루던스(63)-엘리자베스(52)-제임스(48)-라클란(49). 프루던스는 첫번째 결혼, 나머지 셋은 두번째 결혼에서 낳았다.

라클란은 아버지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는 매일 시장에서 평가 받는 상장 기업을 운영하는데 관심이 없다. 폭스뉴스를 둘러싼 논란에도 지쳤다. 폭스코퍼레이션의 법인 건물이 있는 로스엔젤레스와 뉴욕 본사, 콜로라도 애스펀의 거대한 별장 사이를 오간다. 일상 경영은 참모 비엣 딘 변호사에게 맡긴다. 둘째 아들 제임스(48)는 반대로 뉴스코프의 우파 시각과 기후변화를 부인(否認)하는 논조에 반발해, 작년에 뉴스코프 이사를 사임했다. 그는 지난 1월엔 폭스뉴스를 언급하지 않고 “폭도들이 미 의회를 공격하게끔 서서히 영향력을 미친 언론사”를 비난했다.

이 둘 위에 두 명의 누나가 있다. 라클란이 “언론의 독립성을 지킬 가장 확실하고 영구적인 보장책은 이익”이라고 하자, 누나 엘리자베스는 “목적도 없이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재앙을 부르는 요리법”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선(戰線)은 라클란 vs. 세 남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일 “머독 사후(死後)에 자녀들간 이전투구가 일어나, 다른 미디어 그룹이 이 반목을 이용해 머독의 유산을 사들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머독 자신이 바로 밴크로프트 가문으로부터 다우존스 컴패니를 사들일 때 쓴 방법이었다.

◇머독 “아직 멈추고, 죽을 준비 안 됐다”

물론 루퍼트 머독은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다. 그의 어머니도 103세까지 살았다. 그는 한때 “나는 아직 멈출 준비, 죽을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루퍼트 머독의 연금은 방치된 채 그의 ‘은퇴’만 기다린다.

머독이 작년 3월에 산 '그레이트 튜 마너(Great Tew Manor).'

머독은 작년 3월에 3000만 파운드(약4736억원)을 주고 거대한 장원(莊園)을 사들였다. 수리하는 데만 수 년이 걸릴 것이라고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