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67) 전 주한 대사가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에 기용될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합친 기능을 하는 일본 내 최고 사법기관이다. 도쿄의 유력 소식통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나가미네 전 대사를 최고재판소 재판관에 내정했다”며 “그는 다음 달부터 재판관으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앞서 일본의 지지통신도 나가미네가 최고재판소 재판관에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9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를 방문하고 있다.

일본에서 고위급 외교관이 최고재판소 재판관 15명 중 한 명으로 임명되는 것은 1946년 ‘평화 헌법' 제정 이후 이어진 오랜 관행이다. 외무성 조약국장(현 국제법국장) 출신인 구리야마 시게루(栗山茂)가 첫 재판관으로 활동한 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외무성 몫으로 2017년부터 최고재판소 재판관으로 일하고 있는 하야시 게이이치(林景一) 재판관도 국제법국장 출신이다.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정년이 70세로 임기는 따로 없다.

현재 최고재판소는 판사 6명, 변호사 4명, 검사 2명, 대학교수 1명, 행정 공무원 1명, 외교관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최고재판소가 이런 전통을 갖는 이유는 법원이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법관 출신이 대다수인 한국 대법원과는 다르다.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변호사 자격이 필수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법관이 되려면 반드시 변호사 자격이 있어야 한다.

일본에서 국제법 전문가인 외교관을 최고재판소 재판관에 임명하는 관행은 외교와 국제법을 중시하는 일본 정치의 산물이다. 경험 많은 외교관을 포진시켜 사법부가 다른 나라와의 외교에 과도하게 개입, 갈등을 야기하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도 있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외교 활동에 영향 주는 것을 최소화하는 ‘사법 자제’의 한 형태로도 볼 수 있다.

나가미네는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인 국제법 전문가다. 도쿄대 교양학부 출신인 그는 1977년 외교관이 된 후 내각 법제국 참사관, 법규과장, 국제법국장을 지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있는 네덜란드에서 일본 대사도 역임했다. 직전에는 주영국 대사로 근무했다.

나가미네는 위안부, 징용 피해자 문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이던 2016년부터 3년간 주한 일본 대사를 역임했다. 2016년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설치되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대항 조치로서 그를 3개월간 ‘일시 귀국’시키기도 했다.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최고재판소 장관의 의견을 들은 후에 내각이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결정한다’고 규정돼 있어 스가 총리가 나가미네를 직접 선택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