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일 정상회담 ‘정치적 쇼’로서는 의미 있을지 모르나 북핵 문제 진전 어려워
양국 정상 간 신뢰 없는데 스가 총리가 12월 한국 가겠나
한국에는 일한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없어 보인다.
한국은 일본이 받을 수 있도록 스트라이크나,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볼을 던져야.
사사에 겐이치로(佐々江賢一郎·69)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최근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이 도쿄 올림픽 계기로 남북미일 4개국 정상회담 개최를 거론하는 데 대해 “정치적인 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무슨 진전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 외무성 차관, 주미대사를 역임한 사사에 이사장은 18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을 보면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정상들이 먼저 만나서 정치적인 메시지만 발신하는 것이 과연 좋은 지에 대해 잘 생각하는 것이 좋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스가 총리의 12월 서울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방한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식적으로 볼 때 일한 관계가 악화해 있는 상태에서 일본의 총리가 잘될 것이라는 전망도 없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또 “한국에는 일한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없어 보인다”며 “한국은 일본이 받을 수 있도록 스트라이크나,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볼(해법)을 던지지 않으면 관계가 진전되기 어려울 것”고 말했다.
일본국제문제연구소는 일 외무성 산하기관이다. 이 연구소의 수장(首長)인 사사에의 발언은 일본 정부 및 정계의 최근 현안에 대한 입장을 간접적으로 들려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 지난해 징용 문제 해법 중의 하나인 ‘문희상 안’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는데.
“한국에서는 동의를 받지 못했지만, 나는 양국 간 협상의 기초가 될 것으로 봤다.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하나의 베이스(base)가 될 수 있었다. 어떤 것이든 일본에 배려하는 방안은 한국에서 인기가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 문 의장이 이를 추진한 것은 훌륭한 것이었다.”
-한국에는 ‘스가 총리가 이념적이지 않다. 그래서 허들이 높지 않다’ 그런 기대감이 있는데.
“나는 아베 전 총리는 이념적, 스가 총리는 이념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보지 않는다. 스가 총리는 아베 정권의 관방장관을 역임하며 한일관계에 관여해왔다.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이라고 본다. 접근법과 분위기는 다를 수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는 아베 전 총리를 계승한다고 본다. 일본 입장에서 징용 문제는 원칙의 문제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여권에서는 ‘문재인-스가’ 선언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초안을 만든 담당자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대중 오부치 선언은 두 정상의 신뢰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의 일본 문화 개방 등 어려운 문제를 열심히 해결해가는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도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해서 국회에서 연설을 포함하는 결정을 했다. 양국정부가 노력해서 수 개월 간 협상에 협상을 거듭해서 한 것이다. 그런 과정 없이 ‘문재인-스가 선언이 좋다’는 말만 하며 제대로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인가.
“새로운 선언을 내기보다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지금까지 이게 얼마나 달성됐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런 것도 없이 새로운 선언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 새로운 선언 작성을 언급하는 이들에게 제언한다면.
“기회가 있다면 정치인들이 그 선언의 행동 계획까지 모두 읽어보기 바란다. 선언은 어떤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 선언을 만들기까지 한 노력을 살펴야 한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일본에는 1965년 기본조약과 김대중 오부치 선언을 점점 무너뜨려 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도쿄 올림픽 계기로 남북한과 미국, 일본 정상이 도쿄 올림픽 때 만나서 정상회담하는 방안을 띄우고 있는데.
“북한 문제 해결 실패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개로 김정은을 만났다. 그 결과 무슨 진전이 있었나. 정상회담은 정치적인 쇼로서는 의미가 있을 지 모른다. 그런데 무슨 진전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검증이 필요하다.”
- 트럼프·김정은 회담 실패의 교훈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을 보면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정상들이 먼저 만나서 정치적인 메시지만 발신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에 대해 잘 생각하는 것이 좋다. "
- 미국의 바이든 당선인은 어떤 입장인가.
“바이든은 트럼프가 충분한 준비 없이 김정은에게 신뢰감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런 것을 보면 쉽게 미북 정상회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충분히 의논해서 결과가 나오는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납치 문제 해결을 도와주겠다는 입장인데.
“납치문제에서 진전이 있으면 좋다. 그러나 북한이 납치문제만으로 과연 정상회담을 하려고 할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미북관계에서 바이든 당선인의 입장을 지켜보고 있다. 남북, 미북, 일북 관계는 결코 단독변수가 아니다.”
-12월 한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데 스가 총리의 방문가능성은?
" 상식적으로 볼 때 한일관계가 악화해 있는 상태에서 일본의 총리가 잘될 것이라는 전망도 없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신뢰관계가 없이는 방한이 어려울 것이다.”
- 스가 총리가 방한후, 압류된 일본 기업 자신이 현금화되면 국내정치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나.
“징용 문제는 양국관계의 근본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고서 한국에 가는 것은 힘들다.”
-한일관계에 대한 최근 일본의 분위기는
“한국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좋지 않다. 일본 사람들은 데모하지 않고, 요란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심각하다. 일본은 한일관계에 대한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한일관계가 악화해 일본의 지식인들도 힘들어졌나.
“한국에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 온 이들이 요즘 매우 힘들다. 이번 문제의 출발점은 한국이다. 한국은 이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 한일관계 관련 한국이 스트라이크(해법)를 던져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 한국이 볼을 갖고 있다. 그 볼을 일본에 보낼 때 스트라이크나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것을 보내지 않으면 진전되지 않는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관련, 미국이 북한 핵을 인정할 수도 있다고 한 의미는.
“미국의 리버럴 진영에서는 북한 핵이 북한을 지지하는 것이기에 협상을 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불가능한 완전 폐기보다는 일부 감축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본다. 패배주의의 발로이나 중간적인 단계로서 일단 그렇게 하자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한미일 3국 협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 갖고 있나.
“주미대사 시절에 한일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오바마 정권이 이를 우려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자국을 지지해 달라고 했는데, 미국은 그런데 질려 있다. 바이든은 아마도 한일간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 그래도 바이든이 한일관계를 위해서 나서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바이든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지는 모르겠다.(부정적인 의미)”
- 바이든 당선 이후 아시아 지역의 변화와 한미동맹의 미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재편성이 진행될 것이다. 미국의 일본 한국 대만 동맹국의 방위에 대한 공약이 강화되며 계속될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머릿속은 중국이 우주, 사이버 분야에서도 강력한 경쟁자로서 등장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밀접한 한미동맹을 필요로 할 텐데 한국은 어떤 입장인지 명확하지 않다. 밖에서 볼 때 북한과의 관계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아니냐고 보인다.”
- 미일동맹은 우주 협력을 논의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는데 한미동맹의 현 단계를 어떻게 분석하나.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생각하기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있다. 군대가 군사훈련을 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유사시 대응력이 저하될 수 밖에 없다. 과연 이런 것이 한국의 안보에서 플러스가 될지, 안될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비용 문제는
“트럼프와 다르겠지만, 바이든도 주둔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부드럽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만난 바이든과는 어떤 정치가인가.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타인에 대해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는 여성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성 지위와 관련한 문제로도 그와 대화한 적이 있다. 2010년대 중반에는 주일 대사관저에 와서 대화하기도 했다.”
- 2012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사사에안을 만들어 방한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는 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비공식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만약 성사되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이 전제였다. 없는 것으로 한 방안에 대해선 나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사사에 겐이치로는 누구?>
도쿄대 법학부 출신으로 외무성 북동아 과장, 아시아대양주국장을 역임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계보를 이어왔다. 1998년 당시 외무성 북동아시아 과장으로 한국 외교부의 박준우 동북아 과장(주EU대사, 청와대 정무수석 역임)과 함께 한일관계의 경전(經典)이 된 ‘김대중-오부치’선언의 초안(草案) 을 만들었다. 2012년에는 차관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사사에 안’을 가지고 방한했었다. 사사에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부통령으로 활동할 당시 외무성 차관에 이어 2012년부터 약 6년간 주미대사를 역임, 바이든 및 미 민주당과의 긴밀한 채널을 만들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일 외무성의 정책을 수립하거나 알리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