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최대 정적(政敵)이었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자신이 만들고 이끌어 온 파벌 스이게쓰카이(水月會·이시바파의 원래 명칭) 회장에서 물러났다.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12% 득표로 ‘최하위 탈락’한 그는 이날 열린 이시바파 모임에서 “다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책임이 내게 있다”며 사임했다.
그의 사임은 이시바파 내부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파벌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져 그가 차기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대부분의 파벌이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을 지지하고 나서자 이시바파 내에서는 그가 입후보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신중론이 나왔다. “망신당할 가능성이 크니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시바는 총재 선거에 나가 꼴찌를 기록했다. 그가 얻은 표는 전체 535표 중에서 68표에 불과했다.
현 스가 정권은 아베를 계승하고 있다. 이시바파는 이시바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 현 정권에서도 냉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 탓에 그가 어쩔 수 없이 파벌 회장직을 내려놓았다는 관측이 많다.
돗토리현 출신으로 29세 때 중의원 당선 후 연속 11선(選)을 기록한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입각하면서부터 주목받아 왔다. 그는 2012년과 201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와 맞붙어 선전했으나 결국 패배했다. 그러면서 아베의 정적으로 불렸다.
이시바는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에선 늘 1위였다. 올해 들어 8개월간 단 한 번도 ‘차기 총리로 적합한 정치인’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지난 8월 그의 지지율은 35%까지 치고 올라갔다. 일본이 국민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제 국가라면 차기 대권(大權)은 그의 것이었다.
하지만, 아베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시바에게 총리직을 물려 줄 수 없다”며 지난달 총재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결국 아베의 뜻을 읽은 자민당 5대 파벌 영수(領袖)의 밀약에 의해 스가가 차기 총리로 옹립됐고, 그는 최하위인 3위로 탈락했다. “이시바가 2위를 하면 다음 총재 선거가 위험하다”는 자민당 주류의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파벌 정치에 막힌 이시바는 파벌 회장직까지 내려놓으면서 이제 ‘비운(悲運)의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의 추락은 자민당 내에 연쇄 작용을 일으켜 파벌 재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