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유명 연예인들이 연이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개인의 고통을 숨겨야만 하는 일본 사회의 ‘가망(我慢·がまん·인내 또는 자제) 문화’ 때문이라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NYT는 “일본 사회는 자기부정과 인내를 의미하는 ‘가만’을 중시하는데 이 때문에 많은 이가 개인의 고통과 고뇌를 감춰야만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며 “이러한 압박은 흠결없는 이상적인 모습만을 보여줘야만 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일본 연예인들에게는 특히 심하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몇개월간 유명인들의 자살이 잇따랐다. 드라마 ‘런치의 여왕’,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 여배우 다케우치 유코(40)가 지난달 27일 사망했는데,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7월에는 배우 미우라 하루마(30)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8월에는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던 하마사키 마리아(23)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하마사키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외출했다’는 이유로 악플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4일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아들인 배우 고이즈미 고타로와 열애설이 일었던 배우 아시나 세이(37)도 숨진 채 발견됐다.
NYT는 “일본 유명인들의 자살 요인에는 복합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며 끝없는 행복과 성공 서사를 써야만 하는 소셜미디어, 사회 규칙에 순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꼽았다.
외신은 특히 “우치(うち·안)와 소토(そと·밖)의 철저한 분리 문화 속에서 일본 연예인은 부정적인 감정은 안으로만 삭히고 긍정적인 면만을 대중 앞에 보여야 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본 유명인 중 누구도 감정적 스트레스를 공적으로 표출한 적이 없다”고 했다. TV 프로듀서인 츠다 타마키는 “일본 연예인이 정신 건강과 관련해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다면, 그에게는 영원히 꼬리표가 붙어 일거리는 줄게 될 것”이라고 했다.
NYT는 “미국에서는 연예인들이 심리적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만 그러한 행동이 금기시된 일본에서는 정신 건강 관련 서비스 발전이 더디다”고 분석했다.
일본 자살대책지원센터 ‘라이프 링크’를 운영하는 시미즈 야스유키 본부장 역시 “일본 사회에서는 정신 건강 문제로 상담사나 치료사에게 방문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약점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NYT는 “일본 유명인들의 자살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자살 건수가 늘어나는 일본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자살자 수는 1848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15.7% 늘어났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실업, 경기 악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