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휴민트'(왼쪽부터 시계방향) '호프' '군체' 포스터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한국 영화가 최악의 기근을 버텨야만 했던 2025년을 보낸 뒤 2026년 극장가에는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새 판을 짜기 시작했다. 혹독한 한파가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봄은 찾아오는 법. 가뭄 속 단비와 같은 2026년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다시 관객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분주히 채비에 나서며 올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사진=나홍진(왼쪽부터), 류승완, 연상호 감독

'메가 히트작'으로 불렸던 1000만 영화가 사라진 한국 영화는 올해 선택과 집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영화를 이끄는 5대 투자·배급사인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적자에 지갑을 닫았고 오래 묵혔던 창고형 영화도 대부분 소진한 상황이라 한국 영화 제작 편수가 대거 감소했다. 이런 추세를 입증하듯 올해 극장 개봉을 준비하는 상업영화는 약 20편 안팎으로 집계됐다. 투자·배급사들은 성수기 손익 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기대작 1~2편에 올인, 다시 1000만 기세를 끌어올리기 위한 총력전을 펼칠 예정이다.

올해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은 2016년 개봉한 '곡성' 이후 딱 10년 만에 신작을 꺼낸 나홍진 감독의 SF 스릴러 영화 '호프'(포지드필름스 제작)다. 2008년 개봉한 '추격자'를 시작으로 2010년 '황해', 그리고 '곡성'까지 한국 영화 범죄 스릴러 장르의 획을 그으며 '잔혹 대가'로 떠오른 나홍진 감독이 도전하는 첫 번째 SF 장르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입소문을 얻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올해 간판 대작이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비상이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을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다뤘다. 출연진 역시 '역대급' 그 자체다. '곡성'으로 환상의 호흡을 맞춘 황정민을 비롯해 조인성, 정호연 등 국내를 대표하는 명품 배우들이 '호프'의 중심을 잡았고 여기에 '엑스맨' 시리즈, '노예 12년' '에이리언: 커버넌트' 등으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마이클 패스벤더와 '대니쉬 걸' '제이슨 본' '툼레이더'의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호프'의 사건을 일으키는 외계인으로 가세했다. 또한 '본즈 앤 올'의 테일러 러셀, '마인드헌터' 시리즈의 카메론 브리튼도 '호프'에 참여, 국내를 넘어 글로벌 프로젝트로 위용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호프'는 국내 단일 영화 프로젝트 사상 최대 예산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로 업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앞서 2022년, 2024년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시리즈가 1편과 2편 합산해 700억원이라는 한국 영화 역대 최고 제작비 기록을 세웠는데, '호프'가 단일 영화임에도 '외계+인' 시리즈에 버금가는 제작비(700억~1000억)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5월 열리는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또한 '호프'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후문. '호프'는 칸영화제 초청이 확정된 이후 여름 개봉을 목표로 막판 후반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충무로 '흥행킹' 류승완 감독의 따끈따끈한 신작도 2026년 극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류승완 감독의 첩보 액션 영화 '휴민트'(외유내강 제작)는 올해 극장의 포문을 열 설날 기대작으로 등판, 관객의 기대를 끌어올리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국경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파헤치다 격돌하게 되는 남·북한 비밀 요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첩보극인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이 2013년 선보인 '베를린' 이후 13년 만에 다시 첩보 장르로 돌아온 영화다. '베를린' 당시 쫀쫀한 서사와 긴장감 넘치는 구성으로 첩보물의 신기원을 열면서 716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휴민트'에서 더욱 진화된 스토리, 연출로 무장해 돌아왔다.

설날 극장을 뜨겁게 달굴 기대작다운 캐스팅 면면도 화려하다. 2021년 개봉한 '모가디슈', 2023년 개봉한 '밀수'로 류승완 감독의 사단이 된 조인성이 '휴민트'에서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 역으로 세 번째 의기투합했고 마찬가지로 '밀수'에 이어 박정민이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 역으로 다시 한번 '인생 연기'를 펼칠 전망이다. 특히 박정민은 지난해 11월 열린 제46회 청룡영화상에서 가수 화사와 함께한 '굿 굿바이(Good Goddbye)' 퍼포먼스로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전 국민을 '전 남친 앓이' 하게 만든 박정민이 본업으로 복귀해 '전성기' 굳히기에 나설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여기에 신세경이 2014년 개봉한 '타짜-신의 손'(강형철 감독) 이후 '휴민트'로 12년 만에 장르 영화로 컴백을 예고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235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휴민트'는 NEW가 올해 가장 사활을 건 대작인만큼 설날에 총력을 다할 예정이다. 다행인 것은 설날 간판 영화로 등판한 '휴민트'의 대진운이 나쁘지 않다는 것. 할리우드 대작이 빠진 자리에 쇼박스의 설 겨냥 신작인 사극 영화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 온다웍스·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작)가 '휴민트'보다 한 주 빠른 내달 4일 개봉, 2월 초반 흥행 기반을 잡게 되면 이후 본격적인 설 연휴가 시작될 무렵인 11일 '휴민트'가 등판, 입소문을 얻어 설날 극장 쌍끌이 흥행을 이끌 전략이다. 2015년 개봉한 '베테랑'으로 1000만 메가 히트의 맛을 본 류승완 감독이 '휴민트'로 두 번째 1000만 기적을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016년 개봉한 '부산행'을 시작으로 2020년 개봉한 '반도'까지 한국 좀비 영화의 새 판을 짠 K-좀비 버스터의 장인인 연상호 감독의 세 번째 좀비물인 좀비 액션 영화 '군체'(연상호 감독, 와우포인트·스마일게이트 제작)도 올해 베일을 벗는다. 지난해 2억원이라는 초저예산 아트버스터 '얼굴'을 선보여 107만명을 동원, 한국 영화에 파란을 일으킨 연상호 감독은 이번엔 쇼박스와 손잡고 다시 전문 분야인 좀비물로 컴백, 100억원 후반의 고예산 제작비를 투입해 극장 흥행을 노린다.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다뤘다. 연상호 감독 특유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확고한 주제 의식, 여기에 관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엔터테이닝적인 요소까지 더한 '군체'는 앞서 선보였던 '부산행' '반도'와 차원이 다른 더 섬뜩하고 진화한 좀비 떼를 예고편으로 공개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군체'는 2015년 개봉한 '암살'(최동훈 감독)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흥행퀸' 전지현이 합류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앞서 전지현은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아신전'에서 좀비물을 소화했는데, 이번 '군체'에서는 좀 더 본격적인 좀비 액션물의 진수를 펼칠 계획이다. 전지현과 대립각을 보일 빌런은 '천의 얼굴' 구교환이 맡는다. 연상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구교환은 지금껏 본 적 없는 파격적인 악의 축으로 '군체'의 중심에서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올해 상반기 '군체' 공개를 앞둔 연상호 감독은 지난해 진행된 '얼굴' 인터뷰에서 "'군체'를 촬영하면서 좀비물이 정말 재밌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부산행' '반도'와 비슷한지 묻는다면 좀비 자체가 다르다. '군체'는 집단주의에 대한 영화가 될 것 같다. 인공지능도 집단주의에 입각한 방식의 알고리즘 아닌가. 그러한 집단주의 영화다. 기존에 봤던 영화와 다른 공포감과 룰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다. 확실히 기존에 했던 좀비물과 다른 좀비물이 될 것이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흥행 폼 제대로 오른 연상호 감독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극장가도 흥행 멱살을 잡고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렇듯 역대 최대 제작비인 1000억부터 200억원까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세 편의 블록버스터 외에도 올해엔 100억원대 중급 영화와 50억원대 저예산 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첫 한국 영화 신작인 코미디 영화 '하트맨'(최원섭 감독, 무비락·라이크엠컴퍼니 제작)과 범죄 영화 '프로젝트 Y'(이환 감독,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와우포인트 제작)를 시작으로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 '열대야'(김판수 감독, 하이브미디어코프 제작), 사극 영화 '몽유도원도'(장훈 감독, 영화사 두둥 제작), 범죄 액션 영화 '부활남'(백종열 감독, 용필름 제작), 코미디 영화 '와일드 씽'(손재곤 감독, 어바웃필름 제작), 미스터리 영화 '실낙원'(연상호 감독, WOWPOINT 제작), 범죄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제, 최국희 감독, 싸이더스 제작), 공포 영화 '살목지'(이상민 감독, 더램프 제작), 범죄 영화 '랜드'(한동욱 감독, 사나이픽처스 제작), 액션 스릴러 영화 '폭설'(홍의정·박선우 감독, 루이스 픽쳐스 제작) 등이 올해 라인업에 일단 이름을 올렸다. 올해 많은 기대를 모은 또 다른 화제작 CJ ENM의 '국제시장2'(윤제균 감독, JK필름 제작)는 이르면 올해 겨울, 내년 초 개봉을 목표로 올해 초 첫 삽을 뜬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