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1000만은 고사하더라도 500만 돌파도 겨우 해냈던 올해 극장가는 그야말로 날개 없는 추락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초토화 된 지난 2020년, 2021년 제작 상황보다 체감상 더 극악이었던 2025년 한국 영화는 잔혹한 극장 멸망전에서 저마다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 했던 혹독한 한해로 기억됐다.
지난달 영화진흥위원회는 '2025년 10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를 발표했는데,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극장 누적 관객수가 8503만명에 그쳤다고 발표해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5%(1810만명) 줄어든 올해 극장가는 11월, 12월 신작을 더해도 관객수 1억명을 돌파하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던 2020년, 2021년을 제외하고 2004년 이후 21년 만에 연간 관객수 1억명 시대가 붕괴한 셈이다.
그나마 누적 관객수 8500만여명을 끌어모은 것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외화의 흥행 덕분에 간신히 끌어모은 수치다. 10월까지 한국 영화 누적 관객수는 4070만명으로 전년 대비 33.7%(2064만명) 급감했다. 관객이 열광한 한국 영화가 전무했다는 뜻이다. 지난해만 해도 '파묘'(장재현 감독)가 1191만명, '범죄도시4'(허명행 감독)가 1150만명을 끌어모으며 두 편의 1000만 기록을 추가하며 한국 영화 자존심을 지켰는데 올해는 단 한 편의 1000만 영화도 나오지 않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올해 한국 영화 개봉작 중 최고 히트작은 여름 흥행에 성공한 '좀비딸'(필감성 감독)이다. 563만명을 동원한 '좀비딸'이 올해 한국 영화 흥행 1위에 올랐고 뒤를 이어 '야당'(황병국 감독)이 337만명을 모아 2위, '어쩔수가없다'(박찬욱 감독)가 294만명으로 3위, '히트맨2'(최원섭 감독)가 254만명으로 4위, '보스'(라희찬 감독)가 243만명으로 5위에 올라 2025년 흥행 톱5 라인업을 구축했다. 이밖에 '승부'(김형주 감독)가 214만명으로 6위, '하이파이브'(강형철 감독)가 189만명으로 7위, '노이즈'(김수진 감독)가 170만명으로 8위, '검은 수녀들'(권혁재 감독)이 167만명으로 9위, '얼굴'(연상호 감독)이 107만명으로 10위를 기록했다.
여기에 외화 흥행 성적을 더하면 상황은 더욱 처참해진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2'(재러드 부시·바이론 하워드 감독)가 개봉 25일 만인 지난 20일 608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사실상 올해 한국 및 외신 개봉작 통합 1위 자리를 꿰차게 됐다. 이어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소토자키 하루오 감독)이 568만명을 돌파해 2위를 차지했고 올해 한국 영화 흥행 1위인 '좀비딸'은 3위로, 'F1 더 무비'(조셉 코신스키 감독)가 521만명을 동원해 4위,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339만명으로 5위로 재조정된다. 통합 흥행 기록으로 따졌을 때 5위권 안에 한국 영화는 '좀비딸' 단 한 편뿐이다.
올해 한국 영화 중 가장 큰 리스크를 안긴, 아픈 손가락은 여름 텐트폴 영화로 등판했던 '전지적 독자 시점'(김병우 감독)이다. 전 세계 인기를 모은 동명의 웹소설을 영화화한 '전지적 독자 시점'은 순제작비 312억원이 투입된 초호화 블록버스터였다. 손익분기점이 600만명으로 추산됐지만 6분의 1 수준인 106만명에 그치며 엄청난 손실을 봤다. 올해 개봉작 중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히던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역시 순제작비 170억원으로 제작된 고예산 영화 중 하나인데, 개봉 직전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경쟁 부문으로 공식 초청되면서 해외 마켓의 도움을 쏠쏠하게 받을 수 있었다. '어쩔수가없다'는 해외 선판매 계약이 무려 205개국에 이르면서 단번에 순제작비를 회수, 다행히 손익분기점 리스크를 줄였다.
이렇듯 1000만 관객 동원 못지않게 어려워진 손익분기점 돌파 미션 속 반전의 흥행 역사를 만든, 괴물 같은 문제작도 탄생했다. 한국 영화계 큰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은 연상호 감독의 '얼굴'이다. 연상호 감독이 2018년에 출간한 동명의 그래픽노블을 영화화한 '얼굴'은 이른바 '연상호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의 자발적 참여와 20여명의 소수정예 스태프로 팀을 구성해 단 2억원의 순제작비로 만들어진 초저예산 영화다. 프리 프로덕션에 2주, 13회차 촬영으로 만들어진 최적의 가성비 아트버스터로 9월 개봉 당시 많은 화제를 모은 '얼굴'은 손익분기점인 6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107만명을 돌파, 제작비 대비 약 18배에 달하는 수익을 손에 쥐었다. 연상호 감독은 내년에도 초저예산인 5억원 순제작비의 신작 '실낙원'을 연출, 다시 한번 한국 영화 살리기에 나설 예정이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