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호

영화 ‘승리호’ 시작은 신선하다. 2092년을 배경으로 우주 개발 기업 UTS가 병든 지구를 피해 위성 궤도에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해 그 사이 우주쓰레기를 청소하는 노동자 계층을 다룬다.

선택된 5%의 인류만이 지구와 달 사이 우주 궤도에 있는 낙원에서 살 수 있으며 나머지 비시민계급은 승리호 선원들처럼 우주노동자로 우주에서 먹고 살거나, 산소마스크와 고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지구에 남게 된다는 설정이다.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선원인 태호(송중기), 장선장(김태리), 타이거 박(진선규), 로봇 업동이(유해진)는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우주 쓰레기 청소로 간신히 생활을 유지한다.

온 우주를 누구보다 빠릿하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지만 세금이니 우주선 수리비니 일을 하면 할수록 어쩐지 빚만 쌓인다.

할리우드에서 우주를 누벼온 슈퍼 히어로들과는 달리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친근한 모습이다. 매끈하고 날렵한 할리우드 영화의 우주선과 달리 승리호는 어딘가 투박하기까지 하다.

이야기는 우주를 누비지만 돈 걱정에 매일 골치 아픈 이들에게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가 굴러들어오며 전환을 맞는다.

'도로시'를 찾기 위해 온 우주는 혈안이 되어 있고, 승리호의 선원들은 '도로시'와 거액의 돈을 맞바꾸기 위한 위험한 거래에 발을 내딛게 된다. "초능력 수트를 입은 히어로가 아닌 한국의 서민들이 우주선을 타고 날아다닌다는 것이 '승리호'만의 개성"이라고 밝힌 조성희 감독의 말 처럼 할리우드 영화들이 주로 선보여왔던 소재와 장르에 한국적 정서를 버무려 차별화로 보인다.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국인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세계관을 위화감 없이 납득시키기 위해 감독은 캐릭터들이 만화나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보는 이와 별다를 것 없는 한국 사람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을 우선 과제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은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한국적인 SF 영화로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했지만 장르적 기대치에 비해 극적인 재미는 부족하다. 가뜩이나 설정도 익숙지 않은데 캐릭터는 평범하고 상황을 변주하는 완급조절도 무딘 탓이다. 알고 보니 도로시는 대량살상무기가 아니었고, 우주 개발 기업 UTS의 추악한 이면도 드러나지만 뚜렷한 반전으로 다가오지는 못한다.

기대를 모은 액션 시퀀스도 다소 밋밋하다. 박진감 넘치고 스펙터클한 액션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따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스크린과 빵빵한 음향을 가진 영화관 상영이 아닌 안방에서 작은 모니터로 본 물리적 한계를 차치하더라도 그저 빠른 속도로 타국 우주청소선들을 가뿐히 따돌리고 돈 되는 쓰레기를 차지하기 위해 드넓은 우주를 시원하게 활강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장르적 쾌감에 충실한 전투신은 극 후반에야 진가를 발휘한다. 정의감이 없던 오합지졸 선원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로 거칠고 필사적이다. 제작비 240억원이 투입됐다. 영화관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5일 독점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