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전 의원의 재발견이네요. 재미있고, 상황이 너무 웃겨요.”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아버지시네요. 보기 좋았습니다.”
2017년 '노룩패스' 사건으로 많은 국민에게 무례하고 거만하다는 낙인이 찍혔던 정치인 김무성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전 의원이 인간적이고 서글서글한 모습을 뽐냈다. 지난 17일과 2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업글인간'을 통해서다.
해당 방송의 게시판에는 김 전 의원의 출연에 불쾌감을 표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그를 새롭게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는 댓글도 다수 달렸다.
사실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무릎팍도사'(MBC)에 출연해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란히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SBS)에 출연해 인간적인 모습을 대중에게 어필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동상이몽'(SBS)에서 소탈한 모습을 강조했고,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말하는대로'(JTBC)에 출연해 노래까지 선보였다.
― 정치인들 대체 예능에 왜 출연하나?
가장 큰 이유는 ‘이미지 개선’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월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더불어민주당)이 나란히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던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했다.
관찰 카메라 속 나 전 원내대표는 집에서 안경을 쓰고 편한 복장으로 등장, 정치판에서 보여줬던 강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인간적인 모습을 뽐냈다. 제작진은 '인간의 맛'이라는 타이틀을 붙였고, 나 전 원내대표는 장애를 앓고 있는 다운증후군 딸을 방송에 공개하며 시청자의 눈시울을 적셨다.
실제로 이날 방송 후 "'차도녀' 이미지 깬 나경원", "나경원, 다운증후군 딸 공개…'장애아에게 기회주는 게 중요'", "나경원 '토요일마다 맥주파티…낙선하니 동생들이 좋아해' 애주가 면모", "'아맛' 나경원, 어릴적 '완성형 미모' 인증" 등 나 전 원내대표와 관련한 긍정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정치인' 출연으로 제작진이 얻는 이익은 시청률이다. 1월5일 방송된 '아내의 맛' 나경원 편은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인 11.2%를 기록하며 이전 주 대비 두배가량 상승했다. 분당 최고 시청률은 15.4%까지 치솟았다.
한 지상파 PD는 "정치인을 쓰는 이유는 특정 진영 (시청자들)의 시청률 (담보 효과)도 있겠지만, 새로움 때문이 크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은 평소 보기 어려운 사람을 TV에서 보고 싶어한다. 노이즈 마케팅, 화제성 면에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정치인 예능 출연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정치인에게 이미지는 정치인으로서의 역량, 공약만큼 매우 중요한 선거 전략 중 하나다. 정치인들이 예능에 출연을 하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선거 전이나 정계 복귀시기 등과 겹치는 것도 이 이유다.
실제로 21대 총선에 불출마하며 한동안 초야에 묻혀 살던 김무성 전 의원은 최근 정계 복귀의 시동을 걸고 있다. 김 전 의원은 국민의힘 당권 경쟁을 시작으로 대선 국면까지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역할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이 나간 후인 27일에는 한 방송에서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계엄령 검토' 지시가 있었다는 폭탄 발언을 해, 현재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다.
예능의 정치인 출연은 제작진이 정치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제작진이 같은 장면을 두고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정치인의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아내의 맛' 나경원 편의 경우 '인간의 맛'이라는 부제대로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편집됐다.
특히 관찰 예능의 경우 토크쇼 출연보다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는 이유는 시청자가 '실제'라고 믿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많이 성장한 요즘의 시청자는 관찰 예능이 어느 정도의 각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포맷의 특성상 어느정도는 '실제'일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함소원의 조작 논란이 대중의 거센 질타를 받은 이유기도 하다.
국민인 시청자가 예능에서 연출된 정치인의 이미지만으로 투표를 할 경우, 예능이 선거의 당락까지 결정할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 정치인 방송 출연의 부작용 막을 대안은 없나?
현행법상으로는 정치인의 예능을 통한 ‘이미지 정치’를 막을 수 없다.
현행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20조 제1항은 '방송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선거법의 규정에 의한 방송 및 보도·토론 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후보자를 출연 시키거나 후보자의 음성, 영상 등 실질적인 출연효과를 주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보궐 선거의 경우는 60일이다. 나경원 전 의원 출연은 총선 92일 전에 방영됐고, 박영선 장관의 출연은 85일 전에 방송돼 60일 기준을 적용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정치인의 예능 출연과 관련한 법·제도적 정비나 가이드라인이 마련 등이 필요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예능도 선거방송에 준하는 균형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아내의 맛' 나경원·박영선 편의 경우)방송가 사전에 출마 가능성을 아마 알았을 거다. 그래서 방심위에서 논의가 됐다. 방송사에서 출마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의 방송은 차단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시청자 교육을 통해 정치인의 (예능에서의) 이미지 생산에 대해 사전 교육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조송현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전통 뉴스·시사·보도프로그램처럼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외에 이미 나와 있다"며 "선거법에서 선거 캠페인과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정하듯이, (관계자들이) 정치인의 예능 출연도 같은 사안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법이 마련돼 있지 않으니 방송사들이 자체 윤리 규정 등을 자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짚었다.
nam_jh@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