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맺은 ‘페트로 달러’ 체제는 지난 50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가장 강력한 정략결혼이었다. 그러나 이번 이란 전쟁으로 달러 패권의 견고한 벽에 균열이 생겼다.

서방의 오랜 금융 제재로 달러 없는 생존법을 터득한 이란은 중국과의 석유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수용하며 탈(脫)달러화의 선봉에 섰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의 경우 배럴당 1달러 수준의 통행료를 위안화 또는 스테이블코인으로 받는다는 입장이다. 이란의 포화는 유가를 흔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금융 제재가 강할수록, 제재 대상국은 달러라는 무기를 피해 대체 통화라는 방패를 든다.

사우디와 UAE뿐만 아니라 이란까지 브릭스 플러스(BRICS+)에 가입하며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들이 달러 우회로를 공식화했다. 산유국들이 기름 판 돈으로 미 국채를 사주던 ‘페트로 달러 리사이클링’이 약화하면, 미국은 빚을 내기 위해 더 높은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란발 금리 충격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재점화할 수 있다.

중동 분쟁은 안전 자산인 달러 수요를 일시적으로 폭증시키기도 한다. 전 세계 외환 보유고의 약 58%가 여전히 달러인 현실에서 위안화가 달러의 신뢰도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란이 열어젖힌 대안 결제망은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망 차단이란 미국의 강력한 채찍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린치는 “시장의 일시적 소음이 아닌 경제의 기초 체력을 보라”고 했다. 국가의 기초 체력은 화폐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뒤에는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재편하려는 거대한 물줄기가 흐르고, 달러라는 단일 북극성만 보고 항해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페트로달러 체제는 과거의 절대적 지위를 회복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탈달러화와 다극화된 에너지 결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