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균

투자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자산을 여러 곳에 나누어 위험을 줄이는 ‘분산’이다. 현대 재무관리 이론의 뼈대를 세운 해리 마코위츠와 윌리엄 샤프는 분산투자의 원칙을 학술적으로 증명했다.

기업이 마주하는 위험은 크게 ‘비(非)체계적 위험’과 ‘체계적 위험’으로 나뉜다. 비체계적 위험은 개별 기업 파업이나 특정 지역의 재해 같은 것들로 투자 대상 다각화로 피할 수 있다. 체계적 위험은 글로벌 경기 침체나 팬데믹처럼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오랜 기간 글로벌 시장을 누비는 기업들은 생산 거점과 조달처를 다양하게 확보하면 신흥국의 정치적 혼란이나 부분적인 공급망 차질 같은 비체계적 위험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한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지역의 시장이 정상 작동하면 전체 피해를 상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눈부신 기술 발달로 전 세계의 자본과 실물 공급망이 통합되고 긴밀하게 연결된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가 도래하면서, 다각화를 통한 위험 회피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정 지역에 국한된 소규모 사건으로 치부했던 일들이 거미줄 같은 촘촘한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가, 결국 글로벌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체계적 위험으로 돌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6년 현재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이 확산하는 모습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군사적 충돌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은 초기엔 그저 국지적인 위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충격은 글로벌 원유 공급망에 즉각적인 차질을 주었고, 에너지 안보에 위기감을 느낀 국가들이 보유 자원을 무기 삼아 협상력을 높이거나 원유 결제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나비효과를 낳았다. 먼 이국의 지정학적 분쟁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에 깊이 의존하는 한국 수출 기업들의 조달망을 마비시키는 체계적 위험으로 진화한 것이다.

생산 거점을 다양한 곳에 분산해 두었더라도, 원자재가 흘러오는 최상단 경로가 막히거나 생산된 제품을 운송할 통로가 막혀버리면 다각화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게다가 AI(인공지능)와 알고리즘 매매로 연결된 현대 자본시장은 지구 어디선가 나타나는 마찰을 감지하는 즉시 거대한 자금을 이동시켜, 실물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위험을 금융시장의 충격으로 증폭시키곤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은 리스크를 평가하는 잣대를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과거 기업들은 국가의 1인당 소득,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 같은 안심하기 쉬운 경제 지표만 보고 글로벌 투자를 결정하곤 했다. 하지만 정치 위기가 어느 순간 경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거듭 목격하며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이제는 경제적 분석을 통한 수익성 실현 가능성뿐만 아니라, 정치 및 문화적인 맥락에 대한 리스크 분석을 통해 사업 타당성을 치열하게 검증하고 있다. 과거엔 대형 자원 개발 회사들만 신경 쓰던 정치 리스크가, 이제는 부품 하나를 해외에서 조달하는 일반 기업들의 생존마저 좌우하는 최우선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상화된 거시적 충격 앞에서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2005년 MIT의 요시 셰피 교수 등은 기업이 거대한 충격을 견뎌내는 회복 탄력성은 시스템의 여유(Redundancy)와 유연성(Flexibility)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비상용 재고의 비축이나 다중 공급망 유지는 재무제표 상에 부담을 주는 비효율적인 요소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이러한 중복과 여유가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부터 기업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보험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지리적 분산을 통해 모든 비체계적인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는 다각화의 환상이 깨지고 있다. 고정된 계획을 가지고 단기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는 리스크 관리로는 기업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재무제표 상의 숫자 뒤에 담긴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읽는 능력, 그리고 갑작스러운 타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방향을 틀 수 있는 여유와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하나로 연결된 불확실성의 시대에 기업들이 살아남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