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1. 30대 직장인 A씨는 요즘 불면증으로 잠을 설친다. 숙면에 좋다는 차도 마셔봤지만 밤이면 눈이 말똥말똥하다. 그렇다고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한 친구가 말했다. “너 커피 좀 줄여봐. 그렇게 마시니 당연히 잠이 안 오지.” 그때부터 A씨는 매일 수혈하듯 마시던 커피를 줄였다. 이후 불면증은 조금씩 나아졌다.

#2. “여기 아메리카노 7잔이랑 자몽 허니 블랙티 한 잔요!”

한 대기업 마케팅팀의 점심시간.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 가면 20대 직원 B씨는 늘 ‘차’를 주문한다. 어떨 때는 말차, 어떨 때는 밀크티를 주문할 뿐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한 번은 궁금해진 부장이 물었다. “커피 싫어해? 요즘 애들은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던데.” B씨가 답했다. “커피 그 쓴 걸 왜 마셔요. 심장만 너무 빨리 뛰고. 전 별로더라고요.”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노 지터(No Jitter·떨림 방지)’ 열풍이 불고 있다. 커피를 마신 후 손이나 심장이 빨리 뛰는 게 싫어 카페인 없는 음료를 찾거나, 커피를 마시더라도 디카페인 커피를 선택하는 것이다. 왜 이들은 카페인을 마시지 않는 것일까?

◇카페인 민감도 높은 요즘 젊은이들

먼저, 젊을수록 카페인 민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미국 커피 브랜드 에브리데이 도즈가 지난해 9월 미국 커피 애호가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명 중 1명이 커피를 마신 후 불안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들의 67%는 커피 섭취량을 줄였고, 66%는 말차나 버섯 커피 같은 대안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했다. 흥미로운 건 카페인 민감도가 나이와 유전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젊은 성인(18~24세)은 65세 이상보다 카페인으로 인한 불안감을 거의 5배나 더 많이 호소했다.

이는 ‘아데노신’이라는 물질 때문이다. 우리 뇌는 피로가 쌓이면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을 내보내 수용체와 결합시켜 ‘졸음’ 신호를 보내는데, 카페인은 이 수용체에 아데노신 대신 먼저 달라붙어 졸음 신호를 차단한다. 그런데 카페인이 계속 수용체를 막고 있으면 아데노신 수용체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그 수를 대폭 늘려 버린다. 전문 용어로는 ‘상향 조절’, 흔히 ‘카페인 내성’이라고 한다. 즉, 젊을수록 카페인 내성이 부족하기에 더욱 민감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요즘 젊은층이 카페인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이는 건 왜일까. 전문가들은 최근 전 세계 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의도적으로 음주를 멀리하는 것)’ 유행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이들은 건강을 위해 술 마시는 걸 꺼리고, 알코올로 통제력을 잃는 걸 싫어한다. 대학가나 직장가에서는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문화가 사라졌다. 회식도 일 년에 몇 번 하지 않는다. 술을 멀리하며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카페인으로 인한 미세한 심장 두근거림이나 불안감은 과거보다 훨씬 더 ‘감지하기 쉬운’ 불편함이 된 것이다. 결국 카페인 민감도가 갑자기 높아졌다기보다, 건강에 예민한 세대가 자신의 몸이 보내는 경고음을 더 기민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버섯 커피’부터 보리차까지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의 40대가 젊을 적,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속 멋진 뉴요커의 상징은 스타벅스 벤티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그러나 지금 20대 스타들은 말차를 마시거나, 그래놀라걸 열풍 속에 스무디와 요거트를 손에 든다. 윗세대에게 담배 피는 모습이 더 이상 힙하지 않은 것처럼, 젊은 세대에게 커피는 이제 ‘쿨한 음료’가 아니다.

뉴욕 차가버섯 커피

노 지터 열풍이 만들어낸 가장 독특한 트렌드는 대체 커피, 그중에서도 ‘버섯 커피’다. 미국 뉴욕의 웰니스 카페마다 영지버섯, 차가버섯, 사자갈기버섯 같은 기능성 버섯을 곱게 갈아 만든 음료가 주요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뉴욕 맨해튼의 ‘포 시그매틱 쇼룸 룸’과 브루클린의 ‘플랜티드’다. 버섯에 포함된 ‘어댑토젠’ 성분이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 적응을 돕고, 카페인처럼 급격한 각성이 아닌 보다 안정적인 집중력을 유지하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도 ‘유기농 블루마운틴 노루궁뎅이 버섯 커피’, ‘차이즘 버섯 커피’ 등이 출시됐다. 이탈리아산 ‘오르조 보리차’도 유행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대체 커피 음료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24억1000만달러(약 3조5700억원)에 달한다. 이후 대체 커피 시장은 연 평균 6.98% 성장해 2034년엔 44억1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디카페인 커피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마켓 리포트 월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디카페인 커피 시장 규모는 약 158억2000만달러다. 2034년까지 연평균 6.7% 성장해 283억5000만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디카페인 원두 수입량이 약 1만t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