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반려동물의 삶은 인간에 비해 여전히 짧다. 의료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류가 ‘100세 시대’에 성큼 다가선 것과 달리, 반려견의 경우 견종을 막론하고 대체로 생후 20년을 채 넘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예컨대 래브라도 리트리버 같은 대형견은 평균 수명이 10년 안팎에 불과하고, 운이 좋아야 14세까지 살 수 있다. 버니즈 마운틴독은 9세만 돼도 ‘장수견’으로 불린다. 치와와 같은 소형견은 17~18년까지 살지만, 인간의 수명에 비하면 턱없이 짧다.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대하는 이른바 ‘펫 휴머니제이션(Pet Humanization)’ 현상이 대세가 되면서, 반려동물의 수명을 늘리는 장수(長壽) 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관련 스타트업이 잇따라 등장하고, 머지않아 수명 연장 약물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펫 장수 시대에 대한 기대감은 글로벌 펫 헬스케어 시장 성장세에서도 드러난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2024년 628억9000만달러 규모였던 시장은 2030년 1123억3000만달러(약 170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WEEKLY BIZ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펫 장수 산업의 흐름을 짚어봤다.

미국의 한 동물병원에서 반려견이 수중 러닝머신을 활용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미국 AV동물병원

◇인간의 수명 연장 욕구, 반려동물 장수 연구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바이오 스타트업 로열은 반려견의 신진대사와 호르몬 불균형이 질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이를 바로잡아 노화를 늦추는 약물을 개발 중이다. 로열의 첫 번째 제품인 쇠고기 맛 노화 방지 알약은 FDA의 조건부 승인을 받는다면 올해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실제로 FDA는 최근 이 알약이 노령견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합리적인 기대치를 충족했다고 밝혔다. 업체는 대형견의 짧은 수명을 늘리기 위해 소형견보다 더 많이 분비되는 성장 호르몬을 억제하는 주사제와 알약도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 창업자 셀린 핼리우아는 최근 포브스에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수십억 달러의 비용과 특허 문제,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지만, 반려견 수명을 늘리는 일은 충분히 현실적인 영역”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테크 업계에서는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연구에 앞서 반려동물 항노화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인간에 대한 항노화 기술은 난도가 높은 만큼, 먼저 개발 허들이 낮은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기술을 축적한 뒤 이를 인간에게까지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에 대한 투자도 크게 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항노화·장수 관련 스타트업에 최근 약 9억달러(약 1조36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고 있다는 점은 수명 연장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023년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2%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97%는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처럼 여긴다’고 응답했다. 가계 지출에서 반려동물이 차지하는 비율도 점차 늘고 있다.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미국 가계의 반려동물 관련 지출은 연평균 876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과 비교해 90%가량 증가한 수치다.

◇장수의 핵심 ‘비만약’, 반려동물도 맞는다

‘뚱냥이(비만 고양이)’와 ‘뚱멍이(비만 강아지)’는 한없이 귀엽지만, 귀여움이 지나칠수록 주인 곁에 오래 머무를 확률도 떨어진다. 비만은 반려동물 장수에도 독이기 때문이다. 미국 반려동물 제약회사 오카바 파마슈티컬스의 마이클 클로츠만 최고경영자(CEO)는 “비만은 고양이에게 당뇨병과 심장 질환을 유발하고, 결국 수명을 단축시킨다”며 “수의학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미국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GLP(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의 동물용 비만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카바는 바이오 제약회사인 비바니 메디컬과 공동으로 개와 고양이를 위한 이른바 ‘피하(皮下) 이식형 임플란트’를 개발 중이다. 이 기기를 반려동물의 피부에 이식하면 주사를 맞지 않아도 6개월에 걸쳐 엑세나타이드 성분이 서서히 주입된다. 이 성분은 식욕 억제와 포만감 증진, 소화 지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카바는 실제로 이 기기가 112일 동안 고양이의 체중을 최소 5%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사료 제조업체 베터초이스도 최근 GLP-1 계열 동물용 비만 치료제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간식 형태의 GLP-1 투여 방식 연구에도 나설 계획이다. 바이오테크 기업 프로링크스도 당뇨병에 걸린 고양이를 위해 월 1회 투약하는 GLP-1 계열 주사제에 대한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미국 반려동물 비만 예방협회(APOP)에 따르면, 2022년 비만 또는 과체중으로 분류된 반려견과 반려묘는 각각 전체의 59%와 61%를 차지했다. 이는 2010년 조사와 비교해 반려견은 16%포인트, 반려묘는 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마이클 영 베터초이스 CEO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자신이 이미 복용하고 있는 약(비만 치료제)을 반려동물에게 주는 것도 그리 어려운 결정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글쎄”...신중론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약물로 반려동물의 수명을 늘리려는 것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스탠퍼드 장수연구센터 공동소장 데버라 케이도 박사는 “의약품에 의존하기보다 건강한 식습관과 충분한 활동, 사회화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유기견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인위적으로 수명을 늘리는 시도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반려동물 전용 비만 치료제를 둘러싼 우려도 있다. 연구 표본 규모가 작고 대조군이 없다는 점이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약물에 의존하기에 앞서 체중 관리의 기본 원칙을 우선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북미 최대 동물병원 체인 VCA의 잔 피코치엘로 수의사는 “GLP-1 처방을 선택하기 전에 식이 조절, 운동, 잠재적 내분비 질환 확인 등 전통적인 방법을 모두 시도해봐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정작 책임을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돌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리노이대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의 조지 페이히 주니어 교수는 “반려동물이 스스로 통조림이나 사료통을 여는 것이 아니다”라며 “문제의 근원은 결국 주인이 먹이를 지나치게 많이 주는 데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