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이란 전쟁 발발 이후, ‘큰손’들은 기존에 세웠던 올해 투자 전략을 완전히 새로 쓰고 있다. 이들의 돈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세계 최대 주식 수탁 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의 자산운용 부문인 SSIM(State Street Investment Management) 수석 부사장 겸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로리 하이넬은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기관 투자자들이 주식 비중을 크게 줄이거나 현금을 대폭 늘리는 흐름은 관찰되지 않고 있지만, 뚜렷한 움직임은 미국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시장이 출렁이고 있지만, 미국 주식은 여전히 핵심 선호 자산”이라고 말했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BNY멜론과 함께 230년 넘은 역사의 미국 최고(最古) 금융기관 중 한 곳이다. 고객들이 맡긴 수탁자산(AUC)이 53조8000억달러(약 8경1860조원), 자체 운용자산(AUM)도 5조7000억달러(약 8673조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세계적 기관 투자자들이 돈을 맡기기 때문에 큰돈의 흐름을 가장 빨리 포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이넬 CIO는 스테이트스트리트에 합류하기 전 오펜하이머펀드, 씨티 프라이빗뱅크, SEI인베스트먼트 등에서 투자 책임자로 일했다. 지난달 17일 WEEKLY BIZ와 만난 그는 “한국 시장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돌발 변수의 출현으로 갑자기 바뀐 돈의 흐름과 투자 전략을 들어봤다.
◇전쟁 장기화…“침체 가능성 커져”
-시장 전망이 어떻게 바뀌었나.
“2026년에 들어서며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이 개선되고, 인플레이션은 억제되며 계속 낮아지는 꽤 건설적인 환경을 예상했다. 이런 조건이 선진국부터 신흥국까지 넓게 확장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분쟁이 그 전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금 돈은 어디로 움직이고 있나.
“전쟁 초기엔 전통적인 안전 자산으로의 도피가 관찰됐다. 미국 달러, 금, 당연히 석유를 중심으로 한 원자재 가격도 상승했다. 하지만 이란이 생각보다 강하게 저항하고 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당초엔 전쟁이 ‘4~6주’ 지속될 걸로 예상했지만, 이젠 ‘4~6개월’로 전망이 바뀌었다. 이것은 투자자들 입장에선 매우 다른 그림이다.”
-분쟁이 조만간 끝나더라도 파괴된 에너지 시설 재정비 등에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많은데.
“분쟁의 영향이 장기화한다면 가장 먼저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 전쟁 초기엔 몇 주간 유가가 조금 튀어오르는 정도일 걸로 생각했지만,장기화하면서 생산 사이클의 다른 부분에도 파급 효과를 주어 고착화된 인플레 압력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은 각국 통화정책 당국자들을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기준금리의 향방은.
“원래는 올해 연준이 금리를 세 차례나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면 금리 인하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연쇄 파급 효과로 경제성장 둔화, 하반기에는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높아져 실질적인 리스크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주식 시장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투자자들이 덜 위험한 자산을 선호하기 시작할 것이다. 주식에서 완전히 빠져나온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미 광범위한 경제 회복의 혜택을 받았던 섹터에서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산업재·소재·유틸리티 같은 경기민감 섹터는 후퇴(가격 하락)하는 반면, 기술 섹터는 오히려 더 관심을 받고 있다. 대형 우량 기술주는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채권 금리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정부가 군비를 확대하기 위해 재정 적자를 늘릴 것이란 우려가 있다(채권 금리를 높이는 요인).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기 침체나 성장 둔화가 나타난다면 금리는 결국 떨어질 것이다. 초기에는 채권 발행량 증가로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금리는 내려갈 것으로 예상한다.”
◇“美 기술주, 여전히 전망 밝아”
-글로벌 자금은 앞으로 어디로 향할까.
“2024년과 2025년에 잘 작동했던 구조로 다시 돌아갈 걸로 본다. 주로 미국 대형주와 같은 고성장 자산, ‘우량주로의 도피’가 일어나고, 신흥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추세가 역전될 걸로 본다. 금에 대한 수요도 계속돼, 금값이 (트로이온스당) 4000달러로 후퇴하기보다는 6000달러로 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미국 달러와 미국 채권으로도 자금이 더 유입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경기 둔화가 예상돼 채권 가격이 오를텐데, 이렇게 되면 지난 몇 년간 실종됐던 분산 투자 효과를 다시 누리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자산시장 화두였던 ‘탈 달러’ 현상은 그럼 끝난 건가.
“분쟁이 해결된 안정적인 상태라면, 우리의 일반적인 관점에선 향후 5~7년간 달러는 약세를 보일 걸로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에서 도망친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 자산의 성장률은 전 세계 다른 어떤 자산보다 높기 때문에, 여전히 미국에 대한 포지션을 유지할 이유가 충분하다. 재정 적자 우려가 있지만, 국제무역 등의 필요성 때문에 미국 채권에 대한 수요는 계속되고 있다.”
-AI 거품론 때문에 기술주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투자자가 많은데.
“우선 AI가 버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매우 긴 기술적 혁신의 초입에 있다고 본다. AI에 들어가는 엄청난 투자는 정당하다고 보며, 이 혁신의 중심에 있는 회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다른 섹터, 다른 산업이 AI 기술을 채택해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하며 비용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ETF는 이제 ‘몸통’…한국 시장? ‘조심스럽게 낙관적’
-한국 유가증권 시장에선 ETF 거래대금이 전체 거래의 50%에 육박하고 있는데.
“ETF는 기관과 개인 투자자 모두에게 선택받는 투자 수단이지만, 특히 시장의 개인화(retailization)를 촉진하고 있기도 하다. 시장이 개인들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변동성이 매우 커지기도 했다. ETF는 이제 ‘몸통을 흔드는 꼬리’가 아니라 ‘몸통 그 자체’가 됐다. 투자자들이 다양한 자산군에 대해 어떤 심리를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ETF 발행사이기도 한데, ETF 시장에 대한 전망은.
“SPY(스테이트스트리트 SPDR S&P500 ETF) 같은 종목은 전 세계 어떤 개별 상장 종목보다도 거래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주식을 중심으로 ETF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고, 채권 ETF는 초기 단계여서 앞으로 더 많은 채권 ETF 상품들이 나올 수 있다. 기존의 뮤추얼 펀드를 ETF로 전환할 여지도 충분하다고 본다.”
-한국 시장은 어떻게 보고 있나.
“조심스럽게 낙관적(cautiously optimistic)이다. ‘조심스럽게’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주가가 단기간에 엄청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의 포트폴리오에서 한국에 대해 ‘비중 확대(overweight)’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다 떠났다는 생각에는 반대한다. 외국 기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낙관론이 많다. 다만 이란 분쟁이나 다른 이유로 글로벌 성장이 둔화된다면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