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더 이상 단독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미국과 걸프 산유국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형태로 바뀌게 될 겁니다.”
지난 17일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장은 WEEKLY BIZ와 인터뷰에서 이란 전쟁 이후의 중동의 지정학적 변화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지난해까지 주아랍에미리트(UAE) 대사를 지낸 류 원장은 육군 중장 출신이자 야전 군인으로는 처음으로 독일에서 박사 학위(루르대 역사학 박사)를 딴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현재 천궁-II를 수출하는 LIG넥스원에서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중동 지정학과 방위 산업 전문가인 류 원장으로부터 향후 이란 전쟁의 전개 방향 전망과 파급 영향에 대해 들어봤다.
◇“美, 하르그 장악해 이란 재정 압박”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까.
“이란 석유의 90%를 수출하는 거점인 하르그 섬에 미 해병이 상륙해 점령하고 통제를 꾀할 것이라 예측한다. 마두로를 체포했던 특수부대의 위치는 노출되지 않았는데 이미 이란 영토에 진입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작전 시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농축한 우라늄을 확보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본다. 하르그 면적은 군사 교리상 1개 지상군 전투사단이 담당하는 방어책임구역이다. 이란의 혁명수비대의 섬 방어 전투력은 물론 미사일, 드론 화력이 최대로 집중될 것이다. 미 해병 원정대와 제82공수사단 등이 모두 투입된다면, 치열한 전투와 많은 희생자 발생이 우려된다.”
-하르그섬 점령을 통해 미국이 노리는 것은.
“이란의 원유 수출 근원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로써 이란의 석유 시설을 완전히 손안에 넣고 통제하면서 이란 정부의 재정적 타격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이란 정권을 압박해 미국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게 하거나 정권 붕괴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 이를 통해 이란이 비축한 60% 고농축 우라늄을 반출해 미국의 통제하에 두는 것이 주요 목표일 것이다. 또한 향후 우라늄 농축의 절대 금지와 친미 국가로의 변화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본다.”
-또 다른 관건은.
“호르무즈 해협 장악이다. 호르무즈의 경우 현재 이란이 장악해 세계 원유 수급이 원활치 않은데, 기간이 길어질수록 미국의 군사 작전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 유조선 통행이 보장되는 안전한 상태를 만든다면, 장기전으로 가도 미국으로선 전쟁 비용만 조금 더 들 뿐 크게 손해 볼 게 없다.”
-전쟁이 어떻게 끝날까.
“결국 하르그 섬과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 전쟁의 성격과 향방을 가르는 전략적 분수령이다. 트럼프가 ‘이란 핵 위협과 군사 역량이 감소해 승리를 달성했다’고 선언하는 수준에서 끝낼 가능성도 있다. 국제 유가 급등, 전쟁 비용 증가, 국내 정치적 신뢰 하락, 동맹국과의 갈등 등으로 적절한 시점에 출구 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미국 입장에서 조기 종결을 위한 조건은 호르무즈 해협 항해의 안전을 보장하고 미국의 요구대로 이란이 핵 협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전쟁 이후 중동의 양상은 어떻게 바뀔까.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더 이상 단독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미국과 함께 지리적으로 인접한 UAE와 오만 등 걸프 산유국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형태로 바뀌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을 볼 때, 미국과 이스라엘이 처음 전쟁 목적으로 삼았던 핵 프로그램 제거와 이란의 신정 체제 변화에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이란의 공격을 받았던 UAE는 이란의 새 지도부가 다시는 무력 도발하지 않겠다는 입장과 태도 변화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이란에 대해 강경한 노선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UAE 대체할 허브 없다”
-두바이가 이란의 폭격으로 하루아침에 유령도시가 됐다.
“UAE가 순항미사일 등 이란 미사일은 대부분 막았고 드론에 의해 일부 피해를 받았을 뿐이라 인프라 자체는 금방 복구 가능하다. 다만 전쟁으로 인한 충격과 불안 심리가 단기간에 완벽히 해소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신뢰와 안정성의 완전한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중동 내 다른 허브의 대두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 중동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했던 UAE가 이렇게 이란의 공격을 받았으니 향후 투자자, 사업가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입지와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무역·항공·관광 허브 기능 자체는 이른 시일 내에 회복될 것이다. UAE 대사 시절 겪어본 바로 UAE는 중동 내에서 가장 정책적 유연성이 큰 나라로 현명한 국가 리더십이 장기적 발전 비전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속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전쟁을 원치 않았지만, 중장기적인 중동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이번 전쟁을 통해 이란의 핵 능력이 제거되고 혁명수비대의 군사·정치적 영향력이 약화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볼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이란이 온건하고 협력적인 국가로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성 커진 드론 방어 전략”
-이번 전쟁을 통해 눈여겨본 군사 기술은.
“드론 공격과 이에 대한 대응이다. 지금까지 실전 운영되고 있는 것은 주로 (드론의 비행을 방해하는) 소프트 킬(Soft kill) 방식이었는데, 앞으로는 (직접 드론을 공격해 격추하는) 하드 킬(Hard kill) 방식의 대(對)드론 체계가 좀 더 일반화되고 보편화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값싸면서도 위협적인 드론의 가성비가 잘 드러났다. 향후 한반도에서도 위협이 될 수 있는데, 정부와 군이 대드론 방어 체계 개발과 실증 운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류 원장은 이와 관련해 트럼프가 한국 등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해 달라고 한 요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류 원장은 “호르무즈 해협 중 가장 좁은 곳의 폭이 35㎞란 점을 감안하면 국내 함정 가운데 무기 체계의 성능이 가장 좋은 이지스함이 작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보다 작은 군함이 갖고 있는 SM2 등 무기 체계로는 드론의 공격을 온전히 방어하기에 충분치 않을 수 있다. 군함에도 드론 방어에 특화된 그런 장비가 지금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번 전쟁에서 국산 무기도 주목받고 있는데.
“천궁 등이 이란의 발사체에 대한 요격 명중률 면에서 실전 능력을 충분히 보여줘 합격점을 받았다는 평가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UAE, 사우디, 이라크 등에서 천궁-II뿐만 아니라 통합 방공망 구성, AI 기술 적용, 무인화 장비와 드론 및 대드론 체계 공동 개발, 차세대 전투기 공동 사업 등 방산 협력이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한다.”
류 원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재직하며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등의 실무 책임을 맡기도 했다.
-최근 주한미군 사드가 중동으로 반출됐다고 알려졌는데, 방공망 공백 문제는 없나.
“일부 요격미사일 비축분이 중동으로 이전됐다면, 북한의 대량 공격 상황에서 요격 능력에 양적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렇기 때문에 L-SAM(‘한국형 사드’로 불리는 요격 고도 40~70㎞의 국산 방공무기)의 실전 배치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 방공망의 요격 밀도가 다소 낮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사드 포대 본연의 탐지 및 요격 태세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