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가 전 세계를 향해 휘두른 ‘관세 철퇴’는 의외의 곳을 정조준했다. 미국 제조업이 아니라 미국 유통 산업의 심장부, 즉 월마트와 코스트코같은 대형 소매 기업들이었다. 미국에 들어오는 외국산 가전, 의류, 생활용품, 식재료 등에 높은 관세가 붙으면 그 부담은 유통 기업에겐 원가 상승으로 돌아온다.
유통 기업은 두 가지 선택에 내몰린다. 마진을 줄여 관세 부담을 스스로 떠안거나,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거나. 하지만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는 곧바로 아마존이나 테무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두 유통 공룡에게는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두 기업은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대응 전략을 택했다.
◇같은 처지, 다른 선택
코스트코는 2025년 12월 트럼프 행정부 상호 관세 정책이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위법 조치라며 미국 국제무역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대형 글로벌 기업이 현직 대통령 관세 정책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그리고 이달 4일, 법원은 코스트코 손을 들어줬다. 코스트코가 강하게 대응한 이유는 이 회사 핵심 경쟁력이 ‘최저 마진·최고 가치’ 전략이기 때문이다. 코스트코는 내부적으로 ‘마진율 15% 룰’을 철저히 지킨다. 대부분 대형 마트 마진율이 20~30% 수준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관세 부담이 조금만 늘어도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반면 월마트는 법적 대응 대신 협상을 택했다. 월마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매 기업이다. 미국 생필품의 4분의 1 이상이 월마트에서 소비되기 때문에 월마트 핵심 고객층인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격 부담은 곧 정치 문제가 된다. 실제 2025년 5월 월마트 CFO 존 데이비드 레이니가 CNBC 인터뷰에서 “관세 때문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하자 트럼프는 “가격 인상을 관세 탓으로 돌리지 말라”며 즉각 반응했다. 트럼프는 이어 “중국 공급업체와 협의해 관세를 흡수하라. 지켜보겠다”며 사실상 월마트를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두 기업 대부는 솔 프라이스
겉보기엔 전략도, 기업 문화도 다른 두 기업이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출발점에는 한 사람 이름이 등장한다. 솔 프라이스. 바로 창고형 할인점이라는 새로운 유통 모델을 만든 인물이다.
그는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한 창고 형태 매장을 열고 ‘프라이스 클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회비를 낸 회원에게만 물건을 팔고, 상품을 화려하게 진열하는 대신 창고에 물건을 그대로 쌓아 놓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비용을 극단적으로 줄인 대신 상품 가격 마진도 크게 낮췄다. 이 혁신적 실험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이 바로 코스트코 창업자 제임스 시네갈과 월마트 창업자 샘 월턴이다.
코스트코 창업자 시네갈은 사실상 솔 프라이스의 적자(嫡子)였다. 그는 18세 때 프라이스가 운영하던 첫 번째 회사 페드마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거기서 유통의 기본을 배웠다. 그가 코스트코를 창업하면서 세운 철학 역시 솔 프라이스의 원칙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코스트코 매장의 상징과도 같은 1.5달러짜리 핫도그 세트를 수십 년 간 원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그 가격 그대로 판매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고객과의 약속’이라는 철학 때문이다.
반면 월마트 창업자 샘 월턴은 솔 프라이스의 집요한 경쟁자였다. 그는 프라이스의 사업 모델을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했다. 월턴은 프라이스 클럽 매장을 수시로 방문해 진열 방식과 가격을 조사했고, 때로는 녹음기를 들고 매장 내부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기록했다. 심지어 진열대 높이를 재기 위해 무릎을 꿇고 줄자를 대다가 보안 요원에게 쫓겨난 일화도 전해진다.
같은 곳에 뿌리를 두었지만, 월마트와 코스트코는 미국에서 완전히 다른 전략으로 성장했다. 월마트는 미국 소도시부터 공략했다. 대형 백화점과 유통 기업들이 자리 잡은 대도시를 피해경쟁자가 적은 소도시에 대형 할인점을 열고 ‘매일 최저가’ 전략을 내세웠다. 이 전략은 특히 중산층과 서민층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반면 코스트코는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연회비 제도를 도입하고, 상품 종류도 약 4000개 정도로 제한했다. 대신 각 품목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을 골라 고품질 제품을 낮은 가격에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월마트는 미국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최대 유통 기업이, 코스트코는 가장 강력한 충성 고객층을 가진 유통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충성고객 코스트코 vs 테크기업 월마트?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율 관세 기조, 미·중 갈등, 공급망 재편, 여기에 소비 둔화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유통 기업들은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코스트코와 월마트는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연회비 기반 멤버십 회사인 코스트코는 2024년 9월부터 미국·캐나다 기준 골드스타와 비즈니스 회원권 연회비를 60달러에서 65달러로, 이그제큐티브 회원권은 120달러에서 130달러로 올렸다. 7년 만의 인상이었다. 보통 소매업체가 가격이나 이용료를 올리면 고객 이탈부터 걱정하지만, 코스트코는 연회비 인상에도 유료 회원이 오히려 늘었다. 코스트코 2026회계연도 1분기 실적에 따르면 멤버십 수입은 13억29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14% 늘었고, 총 유료 회원 수는 8140만명으로 5.2% 증가했다. 미국·캐나다 회원 갱신률은 92.2%, 전 세계 갱신률은 89.7%에 달했다. 회원들은 “회비가 조금 올라도, 코스트코에서 얻는 가격 혜택과 품질 신뢰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한동안 ‘싸게 많이 파는 오프라인 유통 제국’의 상징으로 군림하던 월마트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회사는 창업 이후 몸담았던 뉴욕증권거래소를 떠나 올 1월 나스닥으로 이전 상장했다. 회사 측은 이 결정을 ‘기술 전진적 접근’과 ‘혁신을 통한 산업 재정의’와 연결해 설명했다. 더 이상 자신을 단순한 오프라인 소매업체로만 보지 말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것이다.
그 배경에는 수익 구조 변화가 있다. 월마트 매출 중심은 여전히 유통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월마트 커넥트’로 불리는 광고 사업이 수익에 큰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 월마트가 가진 방대한 고객 데이터와 트래픽을 바탕으로 브랜드와 판매자에게 광고 공간을 팔아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월마트 광고 사업 부문 매출액은 지난해 64억달러인데, 영업이익은 44억달러에 달한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해도 전체 영업이익 성장세의 30% 이상을 광고 사업이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