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스마트공장·자동화산업전에서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애지봇 G2, 유니트리 G1, 레쥬 쿠아보4 프로. /연합뉴스

‘중국산 반도체를 두뇌로 한 AI(인공지능) 시스템이 전 세계로 확산된다. 중국 양자 네트워크가 통신을 보호하고,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은 바이오테크와 청정 기술 시장도 주도한다. 중국 정부는 데이터·감시·디지털 무역의 규칙을 정하는 위치로 올라서고, 디지털 결제 영역에서도 위안화가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한다. 반면에 미국 기업들은 소위 ‘2군’ 취급을 받는 처지로 밀려난다. 결국 미국은 점점 더 고립되고 동맹 역시 분열된다….’

차세대 경제 질서의 새 중심축을 중국이 맡게 된다는 이 시나리오는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최근 제시한 ‘두 갈래 미래’ 중 하나다. AI·양자컴퓨팅·반도체·바이오 등 첨단 기술 경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패할 경우 맞닥뜨릴 미래의 모습인 셈이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우려가 20년 동안 이어져 왔지만, 여러 행정부에 걸친 대(對)중국 전략은 일관성이 부족했고 자원 배분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미 행정부의 잇단 실책 탓에 중국을 상대로 우위를 지켜야 할 분야들마저 내주게 됐다는 평가다.

연구진은 그 원인으로 미·중 기술 경쟁을 둘러싼 여섯 가지 ‘신화(myth)’를 지목했다. 미 기업과 정부 인사들이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히면서 증상을 원인으로 착각하고, 전략적·장기적 접근보다 즉흥적 대응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혁신 역량을 키우기보다 기존 우위를 지키는 데 과도하게 매달렸고, 내부적으로 상충하는 전략까지 동시에 추진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CSIS는 첫 번째 신화로 ‘중국이 지난 30년간 대규모 보조금 지급과 지식재산권(IP) 절도,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같은 불공정 관행으로 국가 경제 목표를 달성해왔다’는 인식을 꼽았다. 연구진은 “이런 관행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해당 신화가) 중국이 기초연구 투자와 공급망 확대 등을 통해 실질적 혁신 역량을 키우고 있다는 현실을 감췄다”고 꼬집었다.

연구소는 또 미국이 중국의 기술 생태계를 마치 외부와 단절된 폐쇄 구조로 인식해 온 것 자체가 중대한 착오였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자립’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실은 아시아 각국은 물론 유럽연합(EU),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및 북반구 저위도에 있는 개발도상국)와 협력을 확대하며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의균

중국의 경쟁력이 국가 챔피언이나 정부가 낙점한 소수 기업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미국의 시각도 대표적인 신화로 거론됐다. 양국의 경제 시스템은 다르지만, 중국의 혁신 시스템 역시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중국에 대해 “국가 전략과 지방정부 지원, 민간의 창의성이 얽힌 이른바 국가·시장 혼합형 제도를 갖췄다”고 평가한 반면, 미국에 대해선 “대기업 중심 구조가 고착화돼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신생 기업이 성장할 경로도 사라졌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미국이 AI·양자·합성생물학 같은 첨단 기술에 역량을 집중하면 마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처럼 오인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금속 가공이나 원자재 생산 등 기초 역량은 국가 안보와 중산층 생활 안정, 첨단 기술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정치권이 민간과 군에 모두 쓰일 수 있는 이중 용도 기술의 위험을 과장해 안보 위협을 부풀렸다’는 주장 역시 근거 없는 신화로 봤다. 실제로는 위험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클라우드 기업들이 사실상 중국의 AI 모델 훈련을 뒷받침했고, 이렇게 개발된 모델은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의 감시 시스템을 구동하는 데 쓰이고 있다. 또, 미국산 반도체 장비 수출이 중국의 칩 제조 역량 강화를 앞당기는 등 적지 않은 비용을 초래했다고 봤다.

보고서는 ‘중국이 머지않아 미국을 추월해 첨단 기술 패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식의 공공연한 예측도 마지막 신화로 지목했다. 중국이 전기차·배터리·드론 등에서 성공을 거둔 건 사실이지만, 이는 일부 사례만 부각한 ‘체리피킹’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중국 정부가 다년간 추진했다가 실패한 수많은 산업 분야는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