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베 악기점이 2022년 9월 플래그십 매장 ‘이케시부’ 1층 벽면에 내건 만화가 혼다 료의 작품 ‘악기는 강하다. 무기보다 훨씬’. 환경 문제를 유머러스한 한 컷 만화로 풀어냈다. /이케베 악기점

1975년 창업해 일본 악기 유통 시장을 주도해 온 ‘이케베 악기점’은 2021년 3월 시부야에 ‘이케시부’라는 대형점을 열었다. 건물 1층이 강렬한 빨간색 철제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 벽면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총을 든 군인과 환한 미소를 띤 채 기타를 든 뮤지션이 서로를 향해 쏘아대는 대형 작품(1.5m×8m)이 걸려 있다. 총구에서는 화염이, 기타에서는 음표가 튀어나온다. 군인 뒤의 사람들은 울고 있고, 뮤지션 뒤의 사람들은 환호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마저 멈추게 하는 이 작품이 대형 악기점 벽면에 걸려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환경 문제를 유머러스한 한 컷 만화로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혼다 료(本田亮)의 작품이다. 그는 광고대행사 덴쓰에 다니던 1990년대 초, 사하라 사막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그는 파리-다카르 랠리를 따라 사막을 횡단하다 한 마을에서 말라버린 호수 곁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목격했다. 한때는 호수였지만 이제는 메말라버린 땅.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없어 생활이 아니라 생존에 매달리는 사람들. 이 경험은 환경 문제를 알리고 싶다는 소명의식으로 이어졌다. 매달 100시간 넘는 잔업을 해야 했던 탓에 그는 일요일 외에는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려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광고회사 크리에이터 출신답게 그의 작품은 메시지를 유머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산림 파괴를 다룬 컷에서는 줄지어 서 있던 나무들 가운데 맨 앞의 나무 하나를 베어내자, 그 나무가 뒤로 쓰러지며 도미노처럼 숲 전체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 그에게 전쟁은 환경 파괴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그는 앞서 말한 작품을 그려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 “무기와 악기. 두 단어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무기는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악기는 기쁨을 선사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이 작품을 발견한 이케베 악기점은 무릎을 쳤다. 이 회사의 경영 철학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 세계는 반드시 미소로 연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진심으로 음악의 매력을 계속 전한다”로 요약된다. 이 회사는 악기를 단순한 연주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본다. 이 작품은 그 철학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회사는 혼다의 일러스트에 공감해 2022년 3월부터 ‘반전(反戰)’을 주제로 한 모금 활동과 자선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악기는 강하다. 무기보다 더욱’이라는 캠페인도 실시했다. 이케시부 벽면에 혼다의 작품이 걸린 것도 이 무렵이다.

이케베 악기점이 이 벽면에 대형 패널을 전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회사는 이 공간을 ‘이케시부 아트 월’이라 이름 붙이고 ‘크리에이터를 응원한다’는 취지로 여러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해 왔다. 이번 전시는 네 번째 전시였다.

이케베 악기점과 혼다는 시부야를 거니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무기와 악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브랜드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고 행동으로 가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브랜드 액티비즘’이라고 한다. 나이키가 2018년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신념을 가져라(Believe in something)’ 캠페인을 벌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캐퍼닉은 미국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는 시위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미식축구 선수다. 우리 기업도 제품 마케팅을 넘어 사회적 이슈 앞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밝힐 필요가 있다. 이케베 악기점은 그런 브랜드 액티비즘의 좋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