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서 ‘NISA 빈곤’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습니다. 재무상,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 얘기를 듣고 쇼크를 받았습니다. 적립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닙니다.”

지난 10일 일본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 다나카 켄 일본 국민민주당 의원이 가타야마 사츠키 일본 재무상에게 일본 젊은 층 사이에서 투자하느라 생활비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질의하면서, ‘NISA 빈곤’·’NISA 거지’ 현상이 공식 화두로 떠올랐다. NISA는 일본의 소액 투자 비과세 계좌인 ‘Nippon Individual Savings Account’의 약자로, 2014년 처음 도입됐다. 한국의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모델도 NISA다. 지난 2024년 세제 혜택을 대폭 넓힌 ‘신(新) NISA’의 등장 이후로 젊은 층 사이에서 본격적인 투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그 정도가 과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투자하느라 쓸 돈이 없는…‘NISA거지’의 등장

‘신(新) NISA’는 18세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평생 1800만엔(약 1억70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챙길 수 있는 강력한 절세 통장이다. 원래 비과세 적용 기간이 최대 20년이었는데, 제한을 풀어버렸다. 이 통장에 매년 360만엔씩 5년 납입해서 1800만엔을 채우고 이 돈을 잘 굴리면 평생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처음엔 긍정적 효과가 컸다. 정부가 수년간 외쳐온 “저축에서 투자로(貯蓄から投資へ)”라는 구호가 비로소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차 ‘비과세 범위를 채우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심리가 앞서면서, 생활비와 교제비, 취미, 공부 등에 쓰는 돈까지 아껴가며 절세 계좌에 적립을 우선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도쿄의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며 800만엔(약 7500만원)의 연봉을 받지만, 매일 점심을 주먹밥과 인스턴트 국물로 때운다는 청년 A씨는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여행과 취미를 포기하면서 20대를 끝내는 게 정말 괜찮을까?”라고 자문했다. SMBC컨슈머파이낸스에 따르면, 일본 20대의 월평균 투자액은 2023년 2만3589엔에서 2025년 2만9678엔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생활비 지출은 약 7500엔 감소했다. 일본 금융청에 따르면 NISA 출시 첫해인 2014년 말에는 40대 미만 젊은 층이 전체 가입자 중 26.3%였는데, 2024년 말에는 48.7%로 대폭 늘었다.

◇절박한 젊은이들

일본 젊은이들이 ‘현생’을 희생하면서까지 투자로 몰려드는 이유가 뭘까. 현지 언론들은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이들의 불안과 갈수록 가팔라지는 인플레이션 등을 이유로 꼽는다. 대표적인 것이 ‘노후 2000만엔 문제’다.

몇 해 전 금융청은 “공적연금만으로는 은퇴 후 생활비가 월 5만엔 정도 부족해 30년간 총 2000만엔(약 1억9000만원)의 추가 자산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젊은 층이 NISA로 달려가게 만든 도화선이 됐다. 닛케이비즈니스는 “미디어나 SNS에서도 노후 준비 자금이 ‘3000만엔’ ‘4000만엔’까지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지면서 자산 형성의 목표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설명했다.

30년 넘게 지속되던 디플레이션 시대가 끝나고 최근 52개월 연속 소비자물가가 상승세를 기록한 것도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며 현금만으로는 자산 가치를 지키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여성 직장인 재테크 모임을 운영하는 스즈키 마리코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현재 보유하는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투자 외의 선택지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일본의 ‘NISA가난’처럼 투자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지는 사례는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생 김형주(27)씨는 무리한 투자로 생긴 빚을 갚으려고 최근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투자 광풍에 대출까지 받으며 주식에 손을 댔다”면서 “한 달에 20만~30만원으로 생활했고, 이마저 떨어져 친구들에게 돈을 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층 가구의 금융 자산 가운데 주식·채권·펀드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20%에서 2024년 37%로 늘었다. 임나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낮은 이자율, 불안정한 노동시장으로 청년층 사이에서 저축과 근로소득만으론 자산을 축적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청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며 “코로나 이후 ‘영끌족’이란 신조어가 등장하는 등 이런 흐름이 더욱 뚜렷해진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정부가 서울의 과열된 주택 시장을 제어하기 위해 고심하는 가운데, 젊은 세대들은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주식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동산은 여전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가계의 위험 감수 행태는 급증하고 있으며, 주택 가격 부담에 대한 좌절감이 금융 행태를 바꾸고 있다”고 꼬집었다. 가타야마 재무상은 “젊을 때부터 분산 투자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지만, 매달 수입을 어떻게 사용할지 역시 금융 교육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