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우리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태곳적 조상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를 피해 식량을 찾아다녔던 시절을 떠올려보자. 아무리 맛있고 영양가 높은 먹잇감을 운 좋게 백 번이나 찾아냈다 한들, 단 한 번의 실수로 맹수의 이빨에 걸려들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니 맹수가 다가오는 듯한 작은 낌새만 느껴도 곧장 긴장하고 살길을 찾아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맹수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직장인들이 일터에서 날마다 벌이는 사투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DNA 속 생존 본능을 다시금 일깨운다. 그러나 주변에 대한 과도한 염려와 오해, 불필요한 상상까지 더해지면, 어느 순간 자신을 옥죄는 덫이 되기도 한다.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불필요한 상상과 오해는 일종의 비용입니다. 지나치면 조직 구성원의 정신적 비용을 낭비하는 셈이죠.”
지난달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WEEKLY BIZ와 만난 홍순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발간한 책 ‘타인이라는 세계’에서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는 능력인 ‘마음 이론(Theory of Mind)’ 때문에 남을 탓하게 되고, 분열과 혐오가 쉽게 증폭된다고 지적했다. 동료나 상사의 마음을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관점에서 상상해 해석하려고 드는 식이다. 홍 교수는 “(우리는) 정보의 빈 공간을 상상으로 채우는 경향이 있다”며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면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결론을 유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WEEKLY BIZ는 홍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직장인들이 일상에서 겪을 법한 다양한 상황의 원인과 대처법을 짚어봤다.
◇“이해와 오해, 동전의 양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어려운 건 너무 당연하다. 예컨대 다음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춰 놓았다고 해 보자. 그런데 막상 기상 시간이 되면 ‘굳이 이렇게 일찍 일어날 필요가 있나, 괜히 쓸데없는 계획을 세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과 몇 시간 전 알람을 맞추던 어젯밤 자기의 생각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타인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운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이해가 시작될 수 있다.”
-오해를 줄이려면.
“네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상황·정보·맥락·용기다. 많은 사람이 얽힌 상황일수록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에게 시간을 들이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상대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면 말과 행동을 엉뚱하게 해석하기 쉽다. 상대가 살아온 삶의 맥락은 물론 내가 살아온 경험도 마음의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론 타인의 마음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상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이해와 오해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간다.”
◇“시기심은 자연스러운 현상, 다만...”
-직장이나 조직에서 오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직장에서 어떤 제안을 했는데, 상사가 ‘그 문제는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한 경우를 떠올려보자. 이는 추후 검토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이미 어렵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이를 완곡하게 표현한 걸까. 이처럼 말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우리는 상상으로 메우기 쉽다. 불완전한 언어가 엉뚱한 상상을 자극하고 착각을 부르는 셈이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분명히 표현된 내용이고, 어디서부터가 내 상상에 따른 해석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상사의 말 한마디나 제스처에 부하 직원들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인간은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지만, 오늘날 환경은 맹수에게 쫓기던 때와는 다르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프로젝트가 몇 번 실패하더라도 다음 기회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상사의 말 한마디나 행동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위축된다면 조직 안에서 불필요한 정신적 비용만 낭비하는 꼴이다. 이는 조직과 사회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자칫 동료에 대한 시기심으로 번지기도 한다. 경쟁이 일상인 직장에서 피하기 어려운 일인가.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애써 외면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경쟁심이 오히려 노력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먼저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다음 ‘생각’을 선택하면 된다. 감정은 선택하기 어렵지만, 생각과 행동은 고를 수 있다. 누군가는 시기심을 못 이겨 험담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 노력하거나 상대의 장점을 배우려고 할 수도 있다. 부하 직원들이 불필요한 상상에 따른 오해를 줄이도록 분명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상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직장에서 자신을 돌보는 방법은
-말 한마디에 감정적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부장님이 오늘 기분이 나쁜 이유가 자녀 입시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직원과 모르는 직원은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정보가 적을수록 그 빈자리를 상상으로 채우려 들기 때문이다. 때론 어린 시절의 경험이 현재 반응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심하게 야단맞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비슷한 인상의 상사가 피드백을 할 때 과하게 긴장할 수 있는 식이다.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맥락과 반응 패턴을 이해하면 긴장 반응에 대한 ‘영점 조정’을 할 수 있다.”
-직장에서 받은 상처가 자기 비하, 열등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상대가 상처를 ‘준’ 것인가, 아니면 내가 상처를 ‘받은’ 것인가. 이렇게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내가 할 일을 다 했다는 확신이 있다면 타인의 비난이 곧바로 자기 비하로 이어질 가능성은 훨씬 줄어든다. 반대로 실수가 있다면 고치고,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면 된다. 문제는 거기서 ‘나는 바보야’ 같은 자기 규정으로 이어질 때 발생한다. 나는 이를 ‘자기 자신에 대한 편견’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편견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