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AI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불안감이 크다. 그러나 한국이 걱정해야 할 실체는 따로 있다. 사라질 일자리보다, 애초에 양질의 일자리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높은 임금과 복지, 경력 사다리가 기대되는 소위 ‘대기업 일자리’는 전체 고용의 13.9%에 불과하다. OECD 32개국 중 최저 수준이며, OECD 평균 32.2%의 절반도 못 미친다. 미국은 57.6%, 독일과 일본도 40%선을 넘는다.

임금 격차도 구조적이다. 5~9인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300인 이상 대기업의 약 54% 수준이다. 100~299인 중견기업도 대기업 대비 약 71% 수준이다. 소규모 기업 고용 구조는 임금, 복지, 경력 측면에서 대기업과 뚜렷한 간극을 만든다.

누구도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 정책의 방향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중소기업 보호를 국정 목표로 삼아왔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공공조달 물량의 중소기업 우선 배정, 세액공제·보조금 등 수천 개의 지원 프로그램은 작은 기업 규모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규모가 커지면 오히려 규제와 행정 부담이 늘어난다.

이러다 보니 기업들은 ‘작게 머무르는 것이 이득’인 환경에 적응했다. 결과적으로 성장성 없는 기업들이 시장에 오래 남아 있고, 잠재력 있는 중소기업은 중견기업, 대기업 지정을 두려워하게 됐다.

이 같은 구조는 노동시장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준다. 한국의 25~34세 대졸 비율은 OECD 최고 수준에 속하지만, 많은 졸업생이 학위가 필요 없는 직종이나 저임금 직장으로 흩어진다. OECD 통계는 고학력자의 과잉 학력 비율이 OECD 평균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임금 일자리는 결혼과 출산 지연, 고령화와 같은 사회적 난제와 맞닿아 있다.

해결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이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규모가 아닌 성과 기준으로 지원과 규제를 재설계해야 한다.

기업이 성장하고 임금과 복지를 확대할 때 보상받도록 유도해야 한다. 외식업·사교육 등과 같은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 분야는 분산된 사업체 구조를 규모의 경제로 바꾸기 위한 장려책이 필요하다.

기업 합병과 플랫폼 통합을 제도적으로 지원해 경쟁력을 높이고, 역동적인 경제에 걸맞은 현대적 노동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해고와 재고용이 유연한 고용 제도, 직업 전환기 근로자를 위한 사회 안전망, 실질적인 직업 성과와 연계된 평생 학습 체계가 필요하다.

한국은 지금 고학력 인재의 잠재력을 낭비하는 구조다. 양질의 일자리가 모자란 구조를 방치하면 저출산과 저성장은 계속된다. 경제는 영세 기업이나 사라진 시대의 고용 모델에서 성장할 수 없다. 성장을 하면 불이익이 아니라 인센티브가 부여되는 환경에서 미래의 기업과 산업, 일자리가 나올 수 있다.

로버트 앳킨슨(왼쪽) ITIF 회장, 김세진 ITIF 정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