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중동 지역 정세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충격은 개인의 삶에 미치는 파장도 크지만, 기업에 가해지는 충격파는 훨씬 더 깊고 복합적이다.

중동발 악재가 불거질 때마다 기업과 언론은 가장 먼저 유가 전망부터 살핀다. 배럴당 가격이 얼마까지 치솟을지, 기업의 원가 방어선은 어디까지인지, 늘어난 비용을 향후 가격에 어느 정도 전가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시시각각 새로운 이슈가 터지는 환경에서는 애초 전망 자체가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불확실성이 극심해지면 예산 편성, 발주, 투자 등 핵심 의사 결정은 일관성을 잃게 되고, 기업은 자연스레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코노미스트인 압둘 아비아드와 이르판 쿠레시의 ‘유가 불확실성의 거시경제적 영향(2023)’ 연구는 유가 충격이 실물 경제를 어떻게 끌어내리는지를 밝혔다. 세계 주요 언론을 텍스트 분석해 ‘유가 불확실성 지수(OPU·Oil Price Uncertainty)’를 도출하고, 유가 불확실성이 커지면 약 10개월 이후 미국·캐나다·일본 등 주요국의 산업 생산성이 0.34%에서 최대 0.5%가량 하락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안개가 짙게 낀 도로에선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며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기다리듯,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들이 핵심 결정을 미루려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산업 생산성 하락의 핵심 원인이 유가의 절대적인 높낮이가 아니라, 당장 내일의 유가를 알 수 없다는 예측 불확실성 그 자체였다는 부분이다. 특히 요즘처럼 물가 압력 탓에 정책 당국이 선제적인 금리 인하와 같은 거시적 완충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일수록, 유가 불확실성은 기업의 투자와 생산, 나아가 고용 시장을 완전히 경직시켰다.

그러므로 중동발 유가 충격이 발생하면 기업 경영진은 아무리 기대 수익률이 높은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일단 착수를 미루고,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과 신용 한도를 최대한 확보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의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유가 상승과 그에 따른 운임 쇼크는 단순한 원가 상승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물류가 막혀 부품 조달에 차질이 생기고, 생산이 늦어져 납기 지연이 발생하면 공장은 멈추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천문학적인 비용의 손실로 되돌아온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업이 흔들림 없이 나아가려면 다음의 몇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헤지(Hedge)를 ‘이익 극대화’가 아닌 ‘가동률 방어’의 수단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어떤 외부 충격 속에서도 생산 공정을 멈추지 않겠다는 명확한 원칙을 세운다면, 헤지는 보험의 역할을 하게 된다. 둘째,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치솟는데 금리마저 낮출 수 없는 극단적 상황에 대비해 현금 흐름에 여유를 두어야 한다. 셋째, 유가 변동성에 크게 노출된 산업일수록 장기적 관점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체질 전환이나 공급망 다변화 등 예측 불가능성 자체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유가 쇼크가 진짜 무서운 점은 단순히 원가 상승이 아니다. 불확실성에 겁을 먹고 움츠러들어 투자가 지연되고, 결국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에 공백이 생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업이 치러야 할 가장 비싼 비용이다. 시장에 불안감이 팽배할수록 조직은 단기적인 가격 변동에 즉각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위기 상황일수록 불안에 쫓겨 스스로 원칙을 깨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전진하기 위한 전략적 인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여상은 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