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기업들의 경영 전략 길잡이로 군림해 온 ‘컨설팅의 대명사’ 맥킨지앤컴퍼니(이하 맥킨지)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맥킨지를 비롯한 전통의 컨설팅 회사들은 전례 없는 성수기를 보냈다.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 수요가 폭발하고, 때마침 AI(인공지능) 기술이 경영 현장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은 너도나도 기술을 통한 경영 혁신 방법을 자문했다.
그런데 파티가 끝나자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기업들이 인간 컨설턴트의 값비싼 조언 대신 AI 전문 기업들의 범용 AI 소프트웨어를 직접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팔란티어·오픈AI·앤스로픽 등 AI 전문 회사들도 기술력을 앞세워 기업 컨설팅에 나서면서, 한 세기를 이어온 맥킨지의 경영 컨설팅 모델에 위협이 되고 있다.
◇창립 100년…존립 위기 맞은 ‘더 컴퍼니’
2012년 1만7000여 명 수준이던 맥킨지 직원 수는 2020년 3만4000명, 2023년 말엔 4만5000여 명까지 늘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세계 각국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과 공급망 다변화 등을 위해 컨설턴트의 도움을 다급히 구하면서, 맥킨지·보스턴컨설팅그룹(BCG)·베인앤컴퍼니 등 경영 전략 컨설팅 회사로 일감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현재는 맥킨지 전체 직원이 정점 대비 10% 이상 적은 4만여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최단 기간, 최대 폭의 감원이다. 실적도 정체 상태다. 이코노미스트는 산업 분석 기관인 케네디인텔리전스의 추정치를 통해 2024년 맥킨지 매출 성장률이 2%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엔 맥킨지 매출이 세계 전략 컨설팅 시장 점유율 2위인 BCG보다 매출액이 2배 많았지만, 2024년엔 단 20% 많은 수준까지 따라잡혔다. 이대로라면 2027년쯤 BCG에 1위 자리를 내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컨설팅 업계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의 경영진이라면 누구나 맥킨지의 상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경영계에서 ‘더 컴퍼니(The Firm)’라 불릴 만큼, 경영학의 교과서와 같은 상징성 때문이다. 맥킨지는 100년 전인 1926년 시카고대 교수였던 제임스 O. 맥킨지가 시카고에 컨설팅 사무소를 설립한 게 시작이었다. 기업과 정부 기관을 포함한 다양한 조직에 전략적 자문을 제공하면서 경영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1959년 런던에 첫 해외 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현재 50개국 이상에 100개 이상 사무소를 보유하고 있다.
자문료 등으로 한 해 약 160억달러(약 23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더 컴퍼니’가 맞닥뜨린 위기는 사실 구조적인 것으로, 맥킨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영 전략 컨설팅 기업 앞에 놓인 문제이기도 하다.
◇밥그릇 넘보는 팔란티어·오픈AI·앤스로픽
오픈AI는 지난달 말 맥킨지·BCG·액센추어·캡제미니 등 4개 컨설팅 회사와 ‘프런티어 얼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오픈AI의 현장 엔지니어들을 컨설팅 회사와 연결해 고객사들이 소프트웨어 개발과 영업, 고객 지원 같은 핵심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AI 에이전트를 통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오픈AI가 AI 모델과 플랫폼,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사내 전문가를 제공하면 컨설팅 회사들은 이 결과물에 따른 조직 변화를 관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에 AI 기술을 제대로 이식하기 위해 AI 개발사인 오픈AI가 직접 개입한다는 게 골자다. 데니스 드레서 오픈AI CRO(최고매출책임자)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기업들은 AI 기술을 도입하고 확산할 수 있는 명확한 경로와 이를 지원해 줄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I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는 컨설팅 업계에 더 큰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팔란티어가 2023년 내놓은 ‘AIP 부트캠프’ 서비스는 자사 AI 모델에 고객사 데이터를 입력하는 도구를 제공한 뒤 ‘현장 엔지니어’를 고객사에 파견해 AI 시스템을 구축·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오픈AI의 ‘프론티어 얼라이언스’보다 3년이나 빨랐다. 팔란티어식 컨설팅의 핵심은 ‘보고서’가 아니라 ‘바로 작동하는 AI 워크플로우’를 제공하는 것. 파견 나간 자사 전문가들이 늦어도 닷새 안에 해당 기업에서 AI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즉각 구현해주는 게 강점이다.
“컨설턴트들은 파워포인트만 만들고 떠난다. 세상에 필요한 건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라고 꼬집은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의 말 속에 새로운 컨설팅 서비스를 향한 팔란티어의 지향점이 담겨 있다. 컨설팅 산업은 정보가 희소하던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일 뿐, 지금과 같은 AI·빅데이터 시대에는 기술 회사가 그 역할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코노미스트는 “조만간 고객들은 자신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대부분의 업무를 대신하는데 왜 (컨설팅 회사에) 그렇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맥킨지들’의 응전과 과제
맥킨지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이 회사는 10여 년 전인 2015년 말, 영국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퀀텀블랙’을 인수해 자사 AI·데이터 분석 조직으로 편입했다. 생성형 AI 챗봇 서비스의 대명사인 오픈AI 설립 시기와 꼭 맞아떨어진다. 미래를 내다보는 눈만큼은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셈이다. 맥킨지는 퀀텀블랙을 통해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머신러닝 모델을 개발했다. 2013년부터 2023년 사이에 최소 16개의 전문 기술 컨설팅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또 내부 생성형 AI 플랫폼 ‘릴리’를 통해 컨설턴트들이 반복적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한 글로벌 컨설팅사 관계자는 “AI 기업들이 기술 파트너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을진 몰라도, 이들에게 전략 수립부터 실행까지의 통합 경영 조언자 역할을 기대하기는 무리일 것”이라며 여전히 전통의 컨설팅사가 가진 강점은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I 기술의 등장이 대규모 주니어 컨설턴트들이 분석한 뒤 시니어 리더가 이를 정리해 권고안을 만들어 판매하던 종전의 피라미드형 전략 컨설팅 모델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들 스스로 자료 조사와 데이터 분석, 보고서 작성 등이 가능해진 마당에 주니어 컨설턴트들이 더는 필요치 않으며, 데이터에 대한 해석과 전략 제시 영역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미국 AI 기반 컨설팅사 코딩스케이프는 “앞으로의 컨설팅은 계획하고, 구축하고, 실제 운영되는 시스템을 끝까지 책임지는 전문가들에게 맡겨질 것”이라며 “AI는 컨설팅을 망가뜨린 것이 아니다. 그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모델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