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기반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 H-E-B(Here Everything’s Better)는 지역 특성에 맞춘 상품 구색과 친절한 서비스로 10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온 기업이다. 이 슈퍼마켓은 코로나 팬데믹 때 유독 침착한 대응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지역 월간지인 ‘텍사스 먼슬리’ 2020년 8월호는 ‘그 매장만큼 해낸 곳은 없었다(No Store Did More)’라는 특집기사에서 H-E-B의 대응을 “15년 준비의 결과”로 평가했다.
H-E-B는 2005년 허리케인 리타, 2009년 신종플루(H1N1)를 겪으면서 전력·식수·의약품 조달부터 의료진 상담까지 포함한 비상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코로나 초창기인 2020년 1월, 글로벌 공급업체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보다 먼저 팬데믹을 겪은 아시아 국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보를 수집했고, 그해 2월부터는 모의 훈련을 통해 매장·물류센터·인력 상황을 점검한 뒤 “최우선 과제는 매출 극대화가 아니라 공급 안정”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실행도 빨랐다. 매장 영업시간을 줄이는 대신 물류센터 재고 확보와 진열 및 보충 시간을 늘렸고, 달걀 같은 신선식품은 기존 유통 채널뿐 아니라 맥주 유통업체와의 협력까지 동원해 조달 범위를 넓혔다. 고기 수요가 폭증하자 H-E-B 자체 육가공 공장을 24시간 가동하면서도, 매장에 진열된 고기 부위를 수백 가지에서 ‘가장 잘 팔리는 50개’ 정도로 줄였다. 소비자의 선택지를 줄이는 것은 불만을 부를 수 있었지만, 꼭 필요한 상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통해 오히려 신뢰를 쌓았다. 위기 상황에서는 ‘없는 것 없는 슈퍼마켓’보다 ‘필요한 것을 늘 구할 수 있는 슈퍼마켓’이 더 믿음직하기 때문이다.
이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변동성이 커질수록 ‘예측’만으로는 부족하고, 예측과 동시에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글로벌 정세가 불안하고 환율이 급격히 움직일 때 기업은 환율이 오를지 내릴지 그 방향을 맞히려다 정작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변동성이 커지면 원가와 가격, 자금 조달 조건과 신용 지표가 동시에 흔들리기 때문에, “이 환율이 맞나?”보다 “흔들릴 때 어떻게 버틸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영국 맨체스터대 웬디 황(Huang) 등의 2024년 연구는 환율 충격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단순히 ‘수출 기업 vs 수입 기업’으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기업이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그 충격이 비용 측면으로 올 수도 있고, 수요나 판매 측면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무적으로 제약이 큰 기업일수록 같은 환율 충격에도 투자 축소 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결국 환율은 ‘현금 흐름과 투자 여력’의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기본 체력이 약한 기업일수록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도 미루게 된다.
변동성이 심한 시기에 위기 대응은 회사의 현황을 나타내는 한 장짜리 지도를 그리는 일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매출, 비용, 공급업체 및 매출처 집중도 등을 단순하게 도식화해 공급망과 시장 구조에 쏠림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다음은 우선순위를 바꿔본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필수 항목(필수 원재료, 필수 인력, 필수 현금 지출)을 먼저 정하고, 변동성이 커질수록 선택지(대체 조달, 결제 조건, 납기, 가격 조항)를 넓히는 쪽으로 설계를 바꿔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환율 변동이 우리 회사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공급과 판매 중 어느 쪽에 더 민감한지, 또 급변 상황에서도 필수 설비와 인력을 유지할 재무 여력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환율 대응은 ‘전망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흔들려도 멈추지 않게 만드는 설계’에 가깝다. 변동성의 시대에 강한 회사는 방향을 맞히는 회사가 아니라, 흔들림을 ‘상시 조건’으로 받아들이고도 계속 움직이는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