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요즘처럼 어딜 가도 돈 얘기가 화제의 중심인 때도 드물었다. 코스피 지수가 1년 사이 딱 두 배가 됐다.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그만큼 많다.
돈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룬 ‘머니: 인류의 역사’의 저자 데이비드 맥윌리엄스는 한국 상황에 대해 “빚에 기댄 투자가 늘어날수록, 특정 섹터(AI·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랠리가 이어질수록 시장이 붕괴할 때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경계했다. 아일랜드 출신 스타 경제학자인 맥윌리엄스는 아일랜드 중앙은행, 투자은행 UBS·BNP파리바 등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현재는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매년 아일랜드 킬케니에서 경제학과 스탠드업 코미디를 결합해 여는 축제 ‘킬케노믹스’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 축제엔 폴 크루그먼, 장하준 교수 등도 참가했다.
-한국 주식시장이 불타오르고 있다.
“시장의 중심에는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고, 쉽게 흥분하는’ 존재인 사람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포모(FOMO·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감정이 전염되기 시작할 때, 이들은 가격이 오르는 합리적 이유를 따지던 ‘가치투자자’에서 ‘모멘텀 투자자’로 바뀐다. 다 같이 들뜨고, 소문을 퍼뜨리는 등의 행동이 시장 사이클 후반부에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다. 흥분은 자산 가격을 실제 가치보다 더 위로 밀어 올린다.”
-당신은 역사적 중요한 순간마다 돈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시장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연구하고 책을 냈다. 이런 급등장 이후에는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나.
“경제·금융시장에 거대한 충격이 왔던 때를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돈이 이동했다. 주식을 사기 위해 상당한 차입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시장이 탐욕에서 공포로 바뀌면, 매수자가 매도자로 변한다. 주가가 내려가면 자산은 줄어드는데 그 자산을 사기 위해 빌렸던 부채는 그대로다. 개인의 대차대조표가 붕괴하는 것이다. 한두 명이 팔겠다고 나서면 문제가 없지만, 모두가 팔겠다고 나설 때 가격은 장기균형 아래로 폭락한다. 우리는 이런 일을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 때 보았고, 지금 여러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보고 있다.”
-빅테크들의 막대한 AI 투자 수혜자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꼽힌 덕분에 시장이 이만큼 왔는데….
“AI(인공지능) 전도사들은 AI가 1850년대 철도 혁명의 뒤를 잇는 혁명이라고 말한다. 장기적 관점에선 동의하지만, 문제는 이 투자 경쟁에서 승자는 결국 ‘최고의 칩’을 만드는 하나의 회사가 되고 나머지는 버려질 것이란 점이다.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방대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공급할 수 있는 ‘최고의 칩’을 제외한 나머지는 마치 마트에서 팔리지 않고 버려지는 상추나 과일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통기한 있는 상품에 과잉 투자하는 것과 같은 요즘의 AI 투자를 ‘디지털 상추(digital lettuce)’와 같다고 부른다. 철도는 수십 년 이상 남았지만, AI 투자는 그렇지가 않다. 이류 기술에 투자한 자본은 사회적 편익을 남기지 못한 채 버려지기 때문이다.”
-자산 가치 급등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벌리고, 특히 세대 간 격차를 더욱 키운다는 우려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자산 가격이 빠르게 오른다. 집과 주식, 임대료, 배당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부는 급증한다. 반면 근로소득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뒤처진다. 자산은 대개 고령층이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결국 자식보다 부모 세대로 부가 더 쏠린다. 이것이 청년층의 정치 급진화를 부르는 배경이라고 본다. 한국이 보여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제성장 서사의 배경에는 ‘누구든 노력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계층 이동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 컨베이어 벨트가 멈춘다면, 정치 지형 역시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한국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정부는 내국인들의 해외주식 투자를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는데….
“화폐는 국가가 가진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이자, 국민이 돈을 저축하면 국가가 그것을 지켜주겠다는 계약이다. 화폐가 무너지면 이 약속은 사라지고 결국 국가는 무너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겪은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원화 약세는 급격한 붕괴가 아니라 점진적 조정에 가깝다고 본다. 한국의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제도적 기반을 감안하면 통화가 갑자기 무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는 원화 약세가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특히 한국은 기본적인 재화를 수출하던 나라에서, 이제 K팝·K드라마 등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로큰롤과 할리우드를 세계로 수출하던 과거의 미국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