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 패션을 선보인 가수 태연(왼쪽)과 조이. /인스타그램

“요즘 어디를 가도 배기 진, 분홍색 포인트 액세서리, 크롬 선글라스 같은 아이템을 손쉽게 찾을 수 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티지 스타일로 맞춰 입는 것보다 스타일링하기 훨씬 편하죠.”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20대 여성 잭슨 맹검은 AP통신에 이렇게 말했다. 그와 비슷한 또래의 대학생과 인플루언서들은 요즘 중고로 산 미니스커트와 청키 샌들,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옷을 당당히 입고 다닌다고 한다. 모두 2000년대 초반에 큰 인기를 끌었던 이른바 ‘Y2K(2000년 전후)’ 패션 의상들이다.

최근 미 Z세대(1997~2012년 출생자)를 중심으로 ‘Y2K 미학’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롱샴 토트백과 어그 슬리퍼를 신은 10대가 길거리를 거닐고, 스마트폰에 밀렸던 디지털카메라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다시 손에 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의류 매장 풍경도 달라졌다. 매장 벽면에 로우라이즈 청바지·베이비돌 탑 등이 진열된 모습을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련 업체들의 매출은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 신발 브랜드 버켄스탁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6% 뛰었고, 코치 모회사인 태피스트리는 연간 매출이 13% 증가했다. 태피스트리가 새로 확보한 글로벌 고객 220만명 가운데 35%가 Z세대였다. WEEKLY BIZ는 이처럼 Z세대를 강타한 Y2K 열풍 현상을 들여다봤다.

◇디지털 피로감, 단순함 향한 갈망 키워

Z세대가 과거 스타일에 매료된 가장 큰 배경으로는 디지털 피로감에 대한 반발심이 꼽힌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던 이들은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대부분의 소셜미디어가 보여주듯 이른바 ‘무한 스크롤’과 함께 성장한 세대다. 알고리즘과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끊임없이 피드(소식 창)를 볼 수 있는 무한 스크롤이 이들을 디지털상에 가둔 셈이다. 반면에 지금보다 더 단순했던 2000년대 스타일은 피로감에 찌든 Z세대의 구미를 당긴다. 예컨대 CD와 비디오테이프(VHS테이프), 바이닐 레코드(LP) 같은 아날로그 매체를 수집하거나 폴라로이드 카메라, 색칠 공부 책, 수집용 카드 등을 구매하는 식이다.

마이클 타데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사진이 현상되거나 출력되기를 기다리는 과정이 정서적 보상을 높여 (일종의) 지연된 만족감을 준다”며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얻으려는 시대에 이들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방식을 배우는 셈”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불안정 속 ‘정서적 닻’ 역할도

Y2K가 사회·경제·기후·정치적 불안정 속에 놓인 Z세대에게 익숙함과 편안함을 주는 일종의 ‘정서적 닻(emotional anchor)’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타데세 교수는 “이들은 코치나 롱샴 같은 브랜드를 접할 때 친숙함과 안락함을 느끼고 동시에 실험하기에도 안전하다고 여긴다”며 “우리 뇌는 반복적으로 본 것에서 안도감을 찾는다”고 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Z세대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향수를 느끼는 것을 두고 ‘마케터들에게 불변의 법칙’과 같다고 설명한다. 글로벌 웰니스 인스티튜트(GWI)의 크리스 비어 데이터 저널리스트는 “젊은 세대가 역설적으로 더 향수에 젖어 있다”며 “삶의 과도기와 변화가 많고, 젊을수록 수많은 통과의례와 이정표를 겪기 때문”이라고 했다. Z·알파 세대가 과거 트렌드나 문화적 상징에 노출될 수 있는 경로를 더 많이 지녔다는 점도 향수를 자극하는 이유다. 이전 세대는 오래된 사진이나 잡지, 앨범 커버, TV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어야 했으나 오늘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카피캣’ 거부, 촌스러움을 쿨함으로

주목할 점은 Z세대가 단순히 과거를 흉내 내는 ‘카피캣’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을 ‘큐레이터’로 정의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잡지나 쇼핑몰, TV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유행을 따랐다면, Z세대는 핀터레스트와 틱톡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화려한 벨벳 트레이닝복, 로고가 박힌 스웨트팬츠 등을 소화해 내며 ‘밀레니얼 크린지(지나간 밀레니얼 세대의 유행을 보고 후세대가 느끼는 촌스러움과 민망함)’를 이른바 ‘쿨함’으로 뒤바꾼다.

이에 따라 최근 패션 업계도 과거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겨울 신발 대표 주자인 어그는 미니 부츠 라인과 타스만 슬리퍼를 출시했다. 버켄스탁은 인기 클로그와 샌들에 더 다양한 색상과 스타일을 추가하는 등 신제품을 선보였다. 1997년 탄생한 미 캐주얼 럭셔리 브랜드 쥬시 꾸뛰르와 프리미엄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 에드 하디 등도 Y2K 열풍을 타고 다시 떠오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