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최근 역대 최대 수준인 기본급의 2964%의 성과급(초과이익분배금·PS)을 지급받으면서 수많은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연봉이 1억원인 직원이라면 1억4820만원의 성과급을 받게 되는 셈이라고 한다.

이처럼 고액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지난해 노사 합의를 통해 회사가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사원들에게 PS를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 과정에 지난해까지 있던 PS 지급 최대 한도(1000%)를 폐지하고, 성과급의 80%는 그해에 주고 이후 2년에 걸쳐 10%씩 나눠주기로 했다.

SK하이닉스가 노사 합의를 통해 성과급 제도의 대대적인 개선안을 확정짓고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성과급 지급 방식을 둘러싼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이 한 회사·한 업종에 그치는 얘기가 아니라, 국내 기업 문화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조짐이다.

◇보상 체계에서 발생한 상대적 박탈감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받으면서 가장 크게 흔들린 것은 다름 아닌 삼성전자 직원들이었다. 삼성전자는 그간 성과급 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기업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보상 체계를 자랑해왔다. 하지만 하이닉스가 평균 1억원 이상을 지급하는 빅 이벤트가 벌어지자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박탈감이 고개를 들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삼성전자에 6년째 근무 중인 정모씨는 “직무나 역량이 경쟁사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데, 회사 시스템 차이로 보상 차이가 크게 나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이런 배경 아래 삼성전자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단일 과반 노조가 탄생했다. 초기업 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초기업노조)는 지난달 노조 가입자가 6만3000명을 넘겼다고 밝혔는데, 지난해 9월 6300명에서 약 4개월 만에 10배 가까이로 늘어난 숫자다. 초기업노조가 과반 노조로서 근로자 대표 지위를 확보하게 되면 단체 교섭권과 근로조건 결정권 등을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는데, 업계에선 이로 인해 노사가 임금과 인센티브를 놓고 다양한 갈등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투명한 보상에 대한 갈망

단순 액수보다 더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은 보상 기준의 투명성에 있다. SK하이닉스는 노사 합의를 통해 성과급 산정 기준을 ‘영업이익의 10%’로 명문화하며 예측 가능성을 확보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EVA(경제적 부가가치) 방식에 기반해 성과급을 산정하고 있다. 이 수식은 직원들에게 제대로 공개되지 않거나 지나치게 복잡해 ‘블랙박스’로 인식된다.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EVA 기준상 감가상각이나 자본비용 등이 커지면 성과급이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어,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마음대로 정한다”는 불만이 팽배한 실정이다.

이는 비단 삼성전자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국내 대기업 다수는 EVA 기반의 성과급 구조를 따르는데, 직장인 입장에서 자신이 얼마를 어떻게 받는지 예측하기 어려워 성과급에 대한 불신을 낳고 있다. 기세환 태광노무법인 대표는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상황이 좋으면 주고, 안 좋으면 안 주고’ 식으로 투명성이 낮은 성과 보상 제도를 운영해 왔다”며 “분명한 기준을 세운 SK하이닉스 성과급이 국내 대기업 성과 보상 시스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퇴직금 산정에 영향 미치는 성과급

성과급 문제는 퇴직금과도 연관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삼성전자의 연말 보너스 격인 성과 인센티브(OPI·옛 PS)와 반기별 보너스인 목표 인센티브(TAI·옛 PI) 중에 TAI를 ‘임금’으로 보고 퇴직금에 반영하도록 판결했다. TAI의 경우 기본급의 일정 비율로 산식이 정해져 있어 직원이 근로의 대가로 기대할 수 있는 ‘확정적 임금’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 것이다. 반면 SK하이닉스 퇴직자들이 낸 같은 취지의 소송에선 12일 대법원이 PS와 PI 모두 임금성을 부정하며 퇴직금에 반영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두 회사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성과급 규모가 커지면서 사안과 쟁점이 비슷한 후속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로서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계산기를 더욱 꼼꼼히 두드려야 하는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기 대표는 “최근 타 기업들도 자기 회사가 이 판결에 영향을 받는지, 유사성이 있는지 문의가 많다”고 했다.

◇성과급 놓고 주주들 불만

한편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책정한 방침에 대해 일부 투자자 사이에서 불만도 나온다. 특히 외국계 기관이나 연기금은 영업이익을 배당과 재투자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업이익은 직원 몫이 아닌, 기업의 미래와 주주의 권리라는 것이다.

반면 성과는 조직 전체의 결과이기에, 그 혜택 또한 직원과 나눠야 한다는 논리가 맞서고 있다. 영업이익을 기반으로 한 보상은 단기 수익 배분이 아닌 장기적 생산성 제고의 투자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 충돌은 단지 보상 문제가 아닌 기업이 추구해야 할 철학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샐러리맨의 양극화, 노노 갈등

보상 규모가 커지면서 내부 갈등도 생기고 있다. SK하이닉스 직원들 사이에선 “왜 같은 비율로 나누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고 한다. 반도체 개발 등 핵심 부서와 후선 지원 부서 사이의 기여도가 다르다는 인식이 있는데, 고강도 업무를 수행한 직원들과 그렇지 않은 직원 간 성과급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동일 기업, 동일 노동자 집단 내부의 갈등은 국내 기업들이 직면한 또 하나의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회사의 인사 담당 임원은 “성과급 이슈가 과거엔 가진 자(자본가)와 못 가진 자(노동자) 간의 대립이었다면, 이제는 노동자 안에서도 대립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채용 블랙홀’

SK하이닉스발(發) 보상 개편의 나비효과는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대기업의 총보상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대기업으로 인재 쏠림이 가속화되고 중소·중견기업은 인재 가뭄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의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들이 입사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총 보상과 보상 체계’(49%)였다. 직장인들이 금전적 측면을 직장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것이다. 2023년 기준 대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593만원으로 중소기업(298만원)의 1.98배에 달한다. 여기에 성과급으로 인한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일부 청년은 처우가 나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구직 활동을 오래 지속하거나 일도 구직도 하지 않는 ‘쉬었음’ 상태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20·30세대 중 ‘쉬었음’ 인구는 71만70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대기업의 성과가 그 노사만의 성과가 아니라 수많은 하도급 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기여도 있다”며 “차등을 두더라도 대기업이 중소 협력사와 성과를 공유하려는 전향적 접근을 하고, 대신 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중소기업 처우를 개선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