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개인 사진부터 업무용 파일까지 수많은 데이터를 클라우드(가상 서버)에 저장해 놓고 쓰는 시대. 만약 어느 날 갑자기 국가 간 갈등이 벌어졌는데, 내 데이터가 담긴 클라우드 서버가 특정 국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용이 불가능해진다면? 일상의 많은 부분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상황을 기업 비즈니스에 대입하면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고객 정보를 비롯한 기업 데이터부터 운영 시스템까지 클라우드에 의존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클라우드 불능은 기업의 모든 서비스를 멈추게 한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 지정학적 불안이 심화되면서 실제로 많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들이 이런 문제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치고 있다. IT(정보기술) 컨설팅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글로벌 기술 제공업체에 대한 의존 리스크 완화에 대한 문의가 2024년 하반기에 비해 305%나 늘었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이 찾는 해법은 ‘지오패트리에이션(Geopatriation)’이다. 가트너는 ‘2026년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이를 꼽기도 했다. WEEKLY BIZ는 캐롤린 저우 가트너 수석연구원의 자문을 받아 지오패트리에이션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문답 형식으로 풀어 봤다.

◇지오패트리에이션이란.

지정학(Geopolitical)과 송환(Repatriation)의 합성어로, ‘지리적 이전’을 뜻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이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 운영 기반을 글로벌 클라우드에서 자체 데이터센터나 자국·동맹 지역 내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전략을 말한다. 기업들이 더 이상 클라우드 서비스를 비용과 기술만 따져 결정하는 게 아니라 지정학적 요소를 주요 변수로 고려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와 데이터센터의 국적을 따지기 시작한 셈이다.

◇자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것과 차이는.

과거에 은행이나 정부에서 했던 것처럼 모든 데이터를 자체 서버에서 직접 저장·관리하는 방식과 달리, 지오패트리에이션은 글로벌 클라우드를 이용하되 일부 민감한 핵심 데이터(워크로드)만을 선별적으로 옮겨놓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하이브리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예전처럼 자체 서버로 관리하는 건 비용과 효율이 떨어진다. 반면 지오패트리에이션을 통해 기존 글로벌 클라우드의 뛰어난 성능과 편의성 등 장점을 계속 활용하되, 고객의 개인정보·민감 데이터·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데이터만 자국의 소버린 클라우드나 자체 데이터센터로 옮겨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기업들이 중요성을 인식한 계기는.

2024년 7월 발생한 ‘IT 블랙아웃’ 사태 때문이다. 미국 사이버 보안 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OS) 윈도우와 충돌하면서 클라우드 위에서 돌아가는 수많은 서비스들이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항공편과 금융망 마비, 병원 운영 중단 등 전 세계에서 연쇄적 혼란과 약 54억달러의 피해를 일으켰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자사의 비즈니스가 얼마나 복잡하고 취약한 글로벌 기술 공급망 위에서 이뤄지는지를 깨달았다. 이 사건은 기술적 장애에서 비롯됐지만, 회사의 운명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달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 지금 주목받나.

이처럼 외부 요인에 취약한 기술 공급망에 최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그 리스크를 대입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 간 갈등이 격화되며, 특정 국가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국 기업에게 비우호국에 대한 서비스 중단을 명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덴마크 정부 부처와 독일 일부 주 정부에서는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 데이터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제품 사용을 중단하기도 했다. 반대로 구글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지난해 트럼프 집권 뒤 미국의 우발적 조치를 불안해하는 국가의 고객사를 위해 해당 지역 기반의 클라우드를 구성하기도 했다.

각국의 데이터 관련 규제가 증가한 것도 한 이유다. 유럽연합(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시작으로 각국 정부가 데이터 주권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자국민 정보는 자국 내에서 저장·처리하는 법규를 경쟁적으로 내놨다. 룩셈부르크의 클라우드 관리 업체 ‘엠마클라우드’의 드미트리 파넨코프 최고경영자(CEO)는 WEEKLY BIZ에 “이미 규제가 심한 지역과 민감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을 중심으로 지오패트리에이션 추진이 가속화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정학적 위험 발생 이후 다른 서비스로 옮기는 건 어렵나.

특정 클라우드 업체에 대한 종속(벤더 종속) 문제로 인해 쉽지 않다. 특정 클라우드 솔루션에 맞춰 구축된 업무 프로세스와 수년간 특정 시스템에 익숙해진 직원들의 숙련도, 데이터를 옮겼을 때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한 불확실성, 장기 계약에 따른 위약금까지 뒤늦게 벗어나기 어려운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

◇지역 클라우드 분산에 따른 단점은 없나.

지역 클라우드 업체들은 서비스의 깊이나 기능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특히 보안 및 시스템 관리 역량이 글로벌 기업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로컬 업체가 글로벌 클라우드보다 자국 규제에 대해 더 잘 알고 고객 대응도 빠를 수는 있다. 하지만 정교한 AI(인공지능) 기반 위협 탐지 시스템이나, 전 세계 수많은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찾아내는 신규 보안 대응처럼 규모의 경제를 토대로 하는 부문에서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정학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섣불리 이전했다가 기본적 운영 보안 리스크에 노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해법은

완벽한 정답은 없다. 글로벌 플랫폼이 주는 압도적 성능과 지역 플랫폼의 안정성 사이에서 일정 부분을 얻는 대가로 무언가를 잃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상쇄)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각각의 데이터와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하고 민감한지를 기업 스스로 냉철하고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 회사 상황에 맞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향후 비즈니스 환경은 어떻게 변화할까.

하나의 클라우드 서비스로 모든 비즈니스를 해결하는 전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데이터 중요도와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표준이 될 것이라는 게 가트너의 전망이다. 또한 기존 글로벌 클라우드 공급자들은 이에 대응해 특정 국가만을 위한 데이터센터를 짓고, 데이터가 국경 밖 이동이 필요 없도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가트너는 규제가 심한 유럽과 중동 지역의 글로벌 기업 75%가 2030년까지 지오패트리에이션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트너는 “데이터는 어디에서 누가 통제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전략 자산이 되고, 어떤 국가의 기술 파트너와 손을 잡을지 결정하는 공급망 전략도 새로 짜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2027년까지 다국적 기업 25%가 최고 지정학 책임자(CGO) 직책을 신설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CGO는 특정 국가의 정치적 안정성, 법규 변화, 무역 분쟁 가능성 등을 분석해 회사의 공급망과 생산 기지, 데이터센터 위치, 인력을 배치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가트너는 “클라우드와 데이터의 위치 문제가 더 이상 IT 부서의 기술적 문제만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하는 경영진의 핵심 전략 과제가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