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금리가 낮아지고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면, 기업의 자금 조달 반경은 순식간에 넓어진다.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는 국면에서 경영진 사이에서는 “지금이 기회”라는 말이 주문처럼 돈다. 동시에 시장 한켠에서는 “거품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따라온다. 특히 당장의 실적보다 미래의 기대 가치가 큰 기술 기업이나 신사업 분야일수록 주가는 펀더멘털보다 훨씬 빨리 달아오른다.

우리는 버블(거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IMF 사태, 닷컴 버블, 금융 위기처럼 꺼진 뒤의 고통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거품이 다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거품을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거품이 만들어낸 자본을 어디로 보내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선행 연구들이 있다.

프랑스 HEC 경영대학의 자크 올리뷔에 교수는 주식시장, 특히 기업 지분에 형성되는 버블은 기업에 마치 연구개발(R&D) 보조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어, 창업가 투자를 촉진하고 성장을 이끄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생산성과 거리가 먼 부동산이나 원자재와 같은 자산의 버블은 자원 배분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실증적인 연구도 있다. 텍사스 A&M대학의 소레스쿠 교수팀은 2018년 연구에서 산업혁명 이후 상용화된 주요 혁신 사례를 추적했다. 사례 중 약 73%에서 주가 거품이 존재했고, 그 시기에 관련 기업들이 평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자본을 조달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 구간을 거품이 혁신 기업에 열어주는 ‘짧은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으로 묘사하며, 거품이 열어주는 자금 조달 여건이 기술 확산의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기회’의 얼굴이다.

하지만 기회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거품 국면에 조달한 자금은 쉽게 보이지만, 거품이 꺼진 뒤에는 “그 돈을 어디에 썼는가”가 기업의 신뢰와 생존을 가르는 잣대가 된다. 버블이 만들어준 자금은 미래를 앞당기는 ‘시간을 사는 돈’이므로, 경영진은 이 소중한 재원을 생산적인 곳에 사용해야 한다.

첫째, 조달된 자금은 거품이 사라진 이후에도 기업에 남아 경쟁력이 될 ‘장기 역량’에 최우선으로 배분해야 한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이나 무리한 외형 확장보다는, 연구·개발, 핵심 인재 확보, 그리고 안전·품질 시스템 같은 무형 자산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

둘째, 투자 계획을 정교하게 세분화해야 한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한꺼번에 자금을 투입하기보다 특정 마일스톤을 달성할 때마다 비용을 집행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 시장의 과열이 식거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도 투자 속도를 조절하며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

셋째, 소통의 책임이다. 버블 시기에는 ‘가능성’이 마치 ‘확정적 미래’인 것처럼 포장되기 쉽다. 경영진의 말 한마디가 시장의 기대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신중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과장된 약속은 거품 붕괴 후 수년간 기업을 압박하는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시장의 버블을 활용하되 그 과열된 속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최악의 경우 시장이 꺾여 추가 자금 조달이 막히더라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한국 시장에서도 우리는 유사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해 왔다. 바이오, 2차전지, AI 등 특정 섹터가 각광받을 때마다 기업 가치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시간이 지나 섹터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식더라도 뜨거웠던 시기에 마련한 자금이 설비 확충과 기술 표준 확보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반면, 단순히 자산 놀음이나 무분별한 확장에 자금을 소진해버린 기업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자금 조달은 성공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의무의 시작이다. 앞선 연구들이 말하는 버블의 성장 촉진 효과나 ‘기회의 창’ 역시, 조달된 자금이 올바르고 생산적으로 쓰일 때만 성립한다. 경영진은 조달한 자금으로 우리 회사에, 그리고 사회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버블의 시간은 지나가지만, 그 시간에 쌓은 역량은 오래 남는다. 시장이 준 기회를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과열은 위기가 아니라 도약의 날개가 된다.

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