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 시장은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제약사 중심이 아닌) 환자와 소비자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잘 알려진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마이크 두스트다르는 지난해 9월 글로벌 인력 9000명 감원을 포함한 대규모 구조 조정 계획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발언은 비만 치료제 시장의 급격한 변화와 폭발적인 수요를 제때 따라가지 못한 데 대한 자성의 의미로 해석된다. 노보 노디스크는 2021년 미국 시장에 위고비를 처음 출시하며 비만 치료제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후 기대감이 커지면서 2024년 6월 주가는 한때 주당 148.15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 사이 일부 환자들이 복제약이나 대체 치료제로 이동했고, 경쟁사들의 추격도 빨라졌다. 그 결과 주가는 불과 1년 만에 60% 넘게 급락해 현재는 주당 56.57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3년 시가총액 기준 유럽 증시 1위에 올랐던 노보 노디스크가 지난해 6월 새 CEO 선임을 시작으로 최근 대대적 혁신에 착수했다. 차세대 비만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는 한편 소비자 직판 채널을 확대하는 등 사업 운영 전반을 크게 정비하고 있다. WEEKLY BIZ는 배수진을 친 노보 노디스크가 재도약을 위해 어떤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지 짚어봤다.

◇수장은 바꾸고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노보 노디스크는 2021년 주사제 방식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출시하며 비만 치료제 시장을 선도했다. 그러나 생산 능력 부족에 따른 만성적인 공급 차질과 소비자 접근성을 고려하지 못한 마케팅 전략,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미흡이 겹치며 주도권을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에 넘겨주게 됐다.

이에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노보 노디스크는 결국 2017년부터 회사를 이끌어온 라스 프루에르가드 요르겐센 CEO를 지난해 5월 전격 해임했다. CEO 교체와 함께 이사회도 대대적으로 손질됐다. 이사회 구성원 7명이 물러났고, 라르스 레빈 쇠렌센 전 CEO가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했다.

특히 지난해 9월엔 9000명 규모의 인력 감원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구조 조정 계획까지 내놨다. 노보 노디스크는 전 세계적으로 임직원 수가 7만8400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전체 인력의 약 11%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가운데 5000명은 덴마크 본사 직원으로, 덴마크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고로 기록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노보 노디스크의 가장 큰 패착으로 ‘수요 예측 실패’를 꼽는다. 두스트다르 CEO 역시 “(위고비 출시 전) 회사는 위고비 수요가 기존 비만 치료제인 ‘삭센다’의 세 배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었다”고 했다. 삭센다는 노보 노디스크가 2014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비만 치료제다. 그러나 회사 측 예상과 달리 미국 출시 5주 만에 위고비는 삭센다의 4년 치 처방량에 달할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이었고, 생산 능력은 이를 감당해 내지 못했다.

그사이 경쟁사 일라이 릴리는 2023년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추격에 나섰다. 일라이 릴리는 제조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공급을 빠르게 늘렸고, 그 결과 2024년 3월 미국 내 신규 비만 치료제 처방 건수에서 위고비를 앞질렀다. 위고비가 공급 부족에 발목 잡힌 사이, 경쟁사는 생산력과 실행력으로 판을 뒤집은 셈이다.

◇소비자 친화 판매 방식으로 개선

최근 생산 능력을 확대한 노보 노디스크는 사업 운영 방식에 대한 대대적 개선에 착수했다. 핵심은 미국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판매 방식이다. 특히 미국 내 직접 판매 채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노보 노디스크는 ‘중간 유통망’을 최대한 줄이고, 환자가 더 단순한 경로로 약을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노보 노디스크는 위고비와 오젬픽(당뇨병 치료제)을 코스트코와 월마트 등 소매업체 내 약국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데이브 무어 노보 노디스크 미국 사업부 총괄 부사장은 “코스트코와의 협력은 소비자들이 평소 쇼핑하는 매장에서 위고비와 오젬픽을 더 합리적인 가격에 손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려는 회사의 중요한 진전”이라고 밝혔다. 두스트다르 CEO 역시 소비자 관점을 강조하며 “아마존처럼 고객이 기대하는 속도와 유연성에 부응해야 한다”고 했다. 노보 노디스크는 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딴 정부 운영 의약품 판매 사이트 ‘트럼프알엑스(TrumpRx)’에서 현금 결제 환자들에게 최근 FDA 승인을 받은 알약형 위고비를 판매할 계획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가격 체계도 손보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위고비와 오젬픽의 미국 소비자 판매가를 월 499달러(약 72만원)에서 349달러(약 50만원)로 낮췄다. 또한 신규 구매자가 가장 낮은 용량 기준의 제품을 첫 두 달 동안 월 199달러로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모션도 올해 3월 말까지 진행한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11월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트럼프 행정부와 협정을 맺고, 메디케어(고령자 의료보험)에 민간 보험 청구보다 약 30% 저렴한 가격으로 비만 치료제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 조치로 비만 치료제는 처음으로 메디케어 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됐고, 고령층 환자들의 접근성도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다.

◇경구용·고용량 신제품 출시까지

최근 일라이 릴리가 제약 업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하며 독주 체제를 굳히자, 노보 노디스크도 경구용·고용량 비만 치료제 신제품 출시에 사활을 걸고 시장 탈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FDA에서 1일 1회 복용하는 위고비 정제(세마글루티드 25㎎) 치료제를 승인받아 지난 5일 미국 전역에 출시했다. 이 치료제는 임상시험에서 일라이 릴리가 개발 중인 경구약 ‘오포글리프론’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더 뛰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승부수를 띄울 또 다른 비장의 무기는 현재 판매 중인 위고비 용량의 3배에 달하는 고용량(7.2㎎) 위고비 주사제다. 이 제품 역시 임상시험에서 젭바운드와 비슷한 수준의 체중 감량 효과를 나타냈다. 노보 노디스크는 효과가 뛰어난 두 제품을 앞세워 “(경쟁사 대비) 자사 치료제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구상이다. 게다가 두 제품에 대한 생산 능력까지 충분히 확보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 강화를 위해 기업 인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동안 신약 개발은 주로 자체 연구소에 의존해 왔지만, 성장 속도를 높이기 위해 외부 기술을 흡수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 비만 치료제가 신장·간 질환 개선 효과까지 보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적용 가능 질환이 더욱 넓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인수에 나서는 배경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엔 비만 치료제 스타트업 멧세라를 놓고 화이자와 인수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멧세라는 결국 화이자와 손을 잡았지만, 두스트다르 CEO는 앞으로도 비만 치료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