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리브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헨드슨연구소장이최근 서울 중구 BCG 한국 지사에서 WEEKLY BIZ와 만나 "한국의 대기업들은 규모가 크고 기능 중심적인 조직 문화가 강해 변화에 한계가 있다"며 "혁신을 이루려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충돌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보다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인공지능(AI)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AI 기술 동향에 따라 요동치고, 기업들은 ‘AI 혁신’을 생존 문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제는 AI 기업인지 아닌지, 사업 전반에 AI를 얼마나 활용하는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기준점이 됐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AI 시대, 성공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WEEKLY BIZ는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마틴 리브스 헨더슨연구소장을 서울 중구 BCG 한국 지사에서 최근 만나 AI 시대 기업의 생존 전략에 대해 물었다. 헨더슨연구소는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경영 자문을 구하는 BCG의 대표 싱크탱크다. 리브스 소장은 이 ‘두뇌’ 조직의 수장으로, 올해 37년 차 비즈니스 전략 컨설턴트다.

◇AI 혁신, 비즈니스의 갈림길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은 우선 세상을 바꿀 힘이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를 꼽자면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버튼이다. 이 단순한 기능 하나가 소셜미디어라는 산업을 키웠고, 광고·마케팅의 작동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인플루언서와 같은 새로운 직업도 나타났다. 물론 긍정적인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좋아요’ 문화는 청소년의 정신 건강 문제 등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AI라는 혁신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AI가 새로운 혁신의 물결임은 분명하다. 다만 아직까지는 AI 혁신의 방향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혁신은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사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현재 전 세계가 ‘AI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지만,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버튼이 그랬듯 AI가 궁극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단 뜻인가.

“그런 뜻은 아니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일종의 조기 경보 역할을 하는 ‘공공 관측소’는 만들 필요가 있다.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AI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모니터링하고 대응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다만 열린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인류가 처음 전화기를 발명했을 때, 사람들은 ‘남성이 기혼 여성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유혹하고, 결국 결혼 제도가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진지하게 제기됐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사회적 논쟁이었다. 혁신이 일어나는 와중에는 섣부른 규제보다는 신중하게 위험 신호를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현재 포착되는 AI 리스크는.

“대표적인 리스크 중 하나는 ‘진위 검증’이다. ‘무엇이 진짜인가’부터 ‘누가 진위를 검증해야 하나’ 등 풀어나가야 할 질문이 많다. 당장 내 딸도 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데, AI가 작업물을 학습해 예술가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까 걱정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AI는 위기인가 기회인가.

“내 전문 분야인 비즈니스 전략 관점에서 본다면 기회에 더 가깝다. AI는 이미 사업 영역에서 기능을 개선하고, 비용을 줄이고, 복잡한 업무 과정을 단순화하는 등 엄청난 진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술 혁신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물결이다. 두 번째 물결에선 공장의 설계가 바뀌고, 조직과 사회 문화가 재정립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오늘날 기업들은 AI의 기능 자체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구상하고, 사업 방식과 조직 문화를 혁신하며 두 번째 물결을 대비해야 한다.”

◇AI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AI 시대,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까.

“먼저 기업들은 AI가 범용적이고 다목적 기술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AI는 컴퓨터와 비슷하다. 누구나 고사양 컴퓨터를 살 수 있지만, 컴퓨터가 있다고 곧바로 경쟁 우위가 생기는 건 아니다. 컴퓨터 같은 첨단 기기가 생기고 나서 되레 경쟁자들끼리 평준화된 측면이 있다. 핵심은 어떤 사용자가 컴퓨터나 AI 같은 기술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AI를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기존 강점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아마존은 방대한 물류 네트워크라는 기존 경쟁력을 AI로 (배송 시간을 줄이고 고객 데이터를 정교하게 관리하는 등) 보완해 우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둘째는 ‘경로 의존성’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은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위치에 올라 있다. 하루아침에 기업의 정체성을 바꾸기보다는, 기존 강점 위에 AI를 사업 전 과정에 차곡차곡 적용하며 혁신하라는 뜻이다. 마지막은 조직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고,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결국 조직 문화에 달려 있다.”

-기업 CEO들은 어떻게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할까.

“앞서 말했듯 혁신은 ‘우연의 산물’에 가깝기 때문에 기업 문화를 ‘의미 있는 우연’이 나타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핵심은 아이디어 간 충돌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혁신은 기존 아이디어가 다른 아이디어나 기술과 우연히 만날 때 발생한다. 또,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바탕을 가진 사람을 늘려 ‘인지적 다양성’을 키우고, 기존 사업 방식을 빠르게 바꿔 나가는 민첩성도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달라.

“내가 만난 한 소프트웨어 기업은 ‘100달러 실험’이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한 구성원에게 ‘혼자서 일주일 동안 100달러로 먼저 시작하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이런 제도가 있으면 구성원들은 자유롭게 제안하되, 기업은 실험의 경제성까지 챙길 수 있다. 모든 일을 한 번에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씩 검증해 나가면서 가능성이 보이면 과감하게 실행하면 된다.”

◇“韓, 위계 문화가 혁신에 발목”

-최근 한국에서는 ‘혁신이 둔화되고 있다’는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

“한국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첨단 기술 분야는 물론, 대중음악과 영화 같은 문화 산업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다만 혁신 관련해서는 한국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대기업들이 통상 갖는 ‘관성’이라는 약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대기업은 규모가 크고 생존력이 강하지만 변화가 어렵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대부분 대기업들인데, 이들의 혁신에는 늘 관성과 규모가 걸림돌이 되곤 한다. 큰 덩치를 이끌고 민첩하게 행동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지나치게 위계적이거나 기능 중심적인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호기심과 자유로운 의견 충돌 없이는 혁신이 나타나기 어렵다. 실제로 글로벌 비즈니스 IT(정보기술) 서비스 기업 젠팩트는 채용 과정에서 질문하지 않는 지원자를 뽑지 않는다. 회사는 답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또 모든 회의에는 반드시 질문 시간을 포함하고, 관리자들은 일정 기간 이상 의무적으로 현장에 나가야 한다. 새로운 질문을 품고 오라는 취지다. 한국 기업들도 이런 고민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