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AI) 기업 중 하나인 팔란티어에 입사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대학 학위다. 아이러니하게도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는 미 명문 스탠퍼드대 로스쿨 출신이다. 어쩌면 최고의 대학을 경험해 봤기에 학위에 대한 ‘환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섣부른 ‘대학 무용론’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세상이 발전하며 허울보다는 실체, 즉 ‘어디를 나왔는가’보다 ‘무엇을 배웠는가’에 더 높은 가치를 두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런 변화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가 최근 발표됐다. 미국 예일대 경영대의 바바라 비아시 교수와 송 마 교수의 연구다. 연구진은 미 텍사스 내 여러 공립대에 재학한 50만명 이상의 학부생을 대상으로, 강의 계획서를 포함한 수강 기록과 졸업 후 소득 자료를 분석했다. 특히 어떤 교수가 어느 시점에 강의 내용을 얼마나 최신화했는지에 주목했다.

같은 학교, 같은 전공을 졸업했더라도 어떤 강의를 들었느냐에 따라 졸업 이후 성과가 뚜렷하게 갈렸다. 오래된 교재를 중심으로 한 수업보다, 최신 학술 논문과 산업 현장의 지식을 반영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졸업 후 소득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른바 ‘프론티어 지식(지식의 최전선)’을 접한 경험이 차이를 만든 것이다.

물론 “원래 잘하던 학생들이 그런 수업을 들은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수강 신청 당시에는 강의 내용이 얼마나 최신으로 바뀔지 알 수 없어, 누가 최신 지식을 배우게 될지는 사실상 우연에 가까웠다.

이 현상은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 교육이나 개인의 자기계발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성공 공식에 매몰된 조직과, 변화하는 환경을 반영해 내용을 갱신해 나가는 조직의 성과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식의 최전선에 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근 지인과의 ‘AI 시대의 교육법’에 대한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로봇과의 차별화를 위해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단단한 기반 위에 국어·영어·수학과 같은 ‘기본기’가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챗GPT와 같은 AI 서비스는 질문의 미묘한 어감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다. 정확히 묻기 위해선 높은 국어 능력이 필수다. 영어는 단순 번역을 넘어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고, 수학은 확률 기반인 AI 모델의 구조를 이해하고 설계하는 기초가 된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고전적인 기본기에서 나온다. 주위를 둘러보면 기본기가 튼튼한 사람들이 있다. 건강한 신체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고,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며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팔란티어가 원하는 인재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학위라는 종이 한 장의 가치는 옅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단단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늘 지식의 최전선에 서려는 태도, 그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김준목 경제 칼럼니스트(미래에셋증권 고객상품전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