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일본 도쿄 롯폰기 힐스에 세워졌던 무라카미 다카시의 황금 조각상 '오하나의 오야코'. /카이카이 키키

2020년 11월 26일, 도쿄 롯폰기 힐스에 높이 약 10m의 금빛 조각 작품이 등장했다. 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의 ‘오하나의 오야코(Flower Parent and Child)’였다. 꽃을 얼굴로 한 어른이 한 손으로는 꽃 얼굴의 아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꽃다발을 들고 있다. 청동에 금박을 입힌 이 거대한 작품은 이듬해 9월 26일까지 롯폰기 한복판에 ‘무라카미의 세계관’을 채워 넣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는 예술가다. 2000년대 초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에서는 그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당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 중이었던 마크 제이콥스가 이 전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무라카미에게 루이비통 시그니처인 모노그램을 재해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무라카미는 모노그램을 무지개색으로 변주했다. 흰색과 검정색 바탕에 수놓아진 화려한 문양은 럭셔리 패션계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고, 요즘에도 길거리에서 이 문양의 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루이비통무라카미

그는 ‘무라카미 꽃’으로 유명하다. 마크 제이콥스가 무라카미에게 반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꽃이었다. 이 꽃은 루이비통과 만나면서 예술 작품에서 티셔츠, 가방, 잡화 등 대중이 소비하는 이미지로 진화했다. 2010년 이후에는 공간으로도 변신했다. 어린이 병원의 CT 촬영 구역 벽면을 무라카미 꽃으로 장식해, 어린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검사를 받도록 도왔다. 올해는 루이비통과 무라카미의 협업이 시작된 지 20여 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 7개 도시에서 열렸다. 무라카미는 지난해부터 자기 꽃으로 디자인한 신발 사업에 진출했다. 이름하여 ‘오하나 하타케’. 꽃밭이라는 단어를 신발과 연결한 그의 발상이 대단하다. 요즘 무라카미는 ‘무라카미 꽃’ 모자를 쓰고 다닌다. 스스로가 움직이는 광고판인 셈이다.

지난 9월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무라카미 다카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꽃은 일반명사다. 하지만 ‘무라카미’라는 이름이 앞에 놓이는 순간, 12개의 꽃잎을 단 데이지 한가운데서 환하게 웃고 있는 ‘무라카미 꽃’이 떠오른다. 호박 역시 일반명사다. 그러나 ‘쿠사마’라는 단어가 앞에 붙으면서 노란색 바탕에 검은 땡땡이가 박혀 있는 ‘쿠사마 호박’이 떠오른다. 어디 이뿐이랴. 심지어 땅(랜드)이든 쥐(마우스)든 앞에 ‘디즈니’나 ‘미키’가 붙으면서 디즈니랜드, 미키마우스가 탄생하기도 한다. 사람의 이름이 일반명사를 수식했을 때 특정 오브제가 떠오른다면, 이미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한 것이다.

나오시마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베네세하우스 호텔 앞 바다와 맞닿은 곳에서 방문객을 맞는다. /나오시마=김재명 AD본부 과장

브랜드 분야의 최고 석학인 데이비드 아커 교수는 브랜드 자산을 구성하는 요소 중 브랜드 인지(brand awareness)를 설명하면서 “어떤 제품 카테고리를 말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가장 강력한 브랜드”라고 말했다. 콜라 하면 코카콜라가, 밴드 하면 대일밴드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으로서는 세상 살기가 점점 힘들어져 간다. 개인 브랜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시대에는 특정 카테고리에서 자기 이름이 떠올라야 한다. ‘트렌드’ ‘건축’ ‘1타 강사’라는 단어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른다면, 그 사람은 이미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무라카미 꽃, 쿠사마 호박처럼 자기 이름과 일반명사가 특정 오브제를 떠올리게 만들면 이보다 더 강력할 수는 없다.

김밥을 만들고 있다면 김밥 앞에 당신의 이름이 붙었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독특한 모양의 김밥을 떠올리게 만들어야 한다. 굳이 제품이 아니어도 좋다.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는 ‘곤마리 정리법’을 만들어 사업으로 성공시켰다. 어떤 분야에서는 자기 이름이 수식하는 보통명사를 만들면 된다. 그 사람의 얼굴이 아닌 특정 이미지가 떠오를 때, 여러분의 비즈니스는 성공 가도를 걷게 된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