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2000년대 중반에 DVD 대여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을 틀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DVD 사업의 수익성은 양호했고, 스트리밍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헤이스팅스는 기존 데이터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수요가 달라질 것이란 ‘직감(直感)’을 느꼈습니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오늘날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죠.”
세상이 변곡점에 섰다. 지정학적 갈등이 거세지며 ‘세계화의 종말’이란 진단이 힘을 얻고, 인공지능(AI)의 확산은 일터와 일상의 풍경을 빠르게 바꾸는 기술 대전환을 이끌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리더의 촉, 직감은 조직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직행동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라 후앙 미국 노스이스턴대 경영대 석좌교수는 그간 최고경영자(CEO), 투자자, 예술가, 운동선수 등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결정적 순간을 가른 건 치밀한 분석이 아니라 순간의 직감임을 발견했다. WEEKLY BIZ는 최근 한국에서 ‘직감의 힘’이란 책을 출간한 후앙 교수에게 성공한 리더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직감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성공한 리더의 공통점 ‘직감’
-뛰어난 리더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중요한 순간에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 ‘직감’이다. 직감은 간단히 말해 뇌에 스치듯 떠오르는 ‘순간적인 깨달음’이다. 불현듯 느끼는 명료함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직관과는 다르다. 직관은 데이터, 감정, 기억, 패턴, 대화 등을 통합하고 받아들이는 과정(process)이고, 직감은 그 결과(outcome)이다. 오랜 경험과 축적된 데이터가 가장 압축된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직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근육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반복된 경험과 성찰(reflection)이 핵심이다. 소방관이 건물이 무너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소방관들은 찰나에 왜 위기 의식을 느꼈는지 말로 설명은 못 하지만, 그들의 뇌는 이미 수없이 많은 유사한 패턴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저 순간적으로 안다. 정보와 경험이 쌓이면 패턴이 또렷해지고, 그 결과 직감이 튀어나온다.”
-어떤 종류의 경험이 직감을 발달시키는 데 기여하나.
“피드백이 가능한 경험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성공보다 실패가 더 큰 자산이 된다. 실패는 우리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작은 변화를 반복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수백 명의 고객과 대화한 경영자는 어떤 제품이 사랑받고, 외면받는지 고민 없이 가려내는 감각을 얻게 된다. 반복 끝에 직감이 만들어진 것이다.”
-직감은 리더에게 왜 중요한가.
“리더는 충분한 정보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직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직감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오랜 훈련과 경험이 농축되어 만들어낸 일종의 신호다. 직감이 있는 리더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불확실성 클수록 필요한 직감
-불확실한 상황에서 직감에만 의존해도 될까.
“물론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직감은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신뢰도가 높은 판단 도구다. 판단 근거가 부족할수록 기존 분석 모델이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데이터가 빽빽하게 나열된 엑셀 파일을 보는 것보다 직감이 먼저 핵심을 파악하고,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선택할 시간이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클수록 직감이 중요해지는 셈이다.”
-직감이 실패하는 경우는.
“잘못된 경험에서 나온 패턴이 고착화된 경우다. 중요한 변수가 달라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경험에 대한 통찰을 제대로 못 하면 나타날 수 있다. 직감은 조용한 반면, 직감을 방해하는 오만이나 걱정 등은 언제나 시끄럽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직감은 타고난 능력이라고 봐야 할까.
“직감은 훈련 가능한 능력에 가깝다. 새로운 경험에 노출되고, 경험 속에서 성찰을 거치면서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시간이 축적되면 뇌는 더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된다. 우리가 ‘본능’이라고 느끼는 것도 사실 축적된 지식이 빠르게 튀어나온 결과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훈련해야 하나.
“일상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성찰하면 된다. 가령 나는 과거에 한 거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안감을 느꼈는데, 이런 느낌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되짚어보니 몇 년 전 실패했던 파트너십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이런 식으로 현재의 느낌과 과거의 데이터를 연결해보는 시도를 많이 하는 걸 추천한다. 또 의사결정을 할 때 머릿속에서 일어난 사고 회로를 기록하거나 직감을 끌어낼 수 있는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 일도 필요하다.”
◇AI도 대체 불가능한 ‘인간 역학’
-데이터와 직감이 충돌할 때, 리더는 어떻게 균형 잡아야 하는가.
“데이터와 직감이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일 때, 둘 중 하나를 택하기보다 각각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되물어야 한다. 때로는 데이터가 삶의 경험이 잡아낸 중요한 변수를 놓쳤을 수도 있고, 반대로 직감이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고의 리더는 두 신호를 상호보완적으로 여기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직감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더 커졌다고 보나.
“시대가 급변하면 (직감 훈련에 필요한) 데이터도 빠르게 낡는다. 기존 데이터로 분석을 마쳤을 때는 이미 상황이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직감은 이런 역동적인 상황에 빠르고 명료하게 대응하는 역량이기도 하다. 데이터는 매우 중요하지만, 직감은 데이터가 아직 비추지 못한 회색지대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AI가 인간의 직감을 이해하거나 따라 할 수 있다고 보나.
“AI는 패턴을 빠르게 식별하는 등 직감의 일부를 모방할 수 있다. 하지만 AI는 온전한 인간의 경험을 담지 못한다. 가령 AI는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포착하지도, 상황이 주는 긴장이나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신뢰를 알지 못한다. AI에는 감정과 결합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AI는 의사 결정을 보조할 수는 있지만, 단순한 ‘패턴’이 아닌 ‘의미’에서 비롯된 직감은 인간만의 영역이다.”
-AI나 데이터 분석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직감의 본질적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나.
“AI는 미묘한 뉘앙스나 의도,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읽어내지 못한다. 리더는 종종 ‘인간 역학(human dynamics)’이 중심이 되는 순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직감은 방 안의 분위기, 팀의 결속력, 악수 속에 담긴 신뢰의 강도를 읽게 해준다. 이런 통찰은 코드가 아니라 몸에 새겨진 인간 경험에서 나오고, AI는 결코 이를 알아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