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지쳐 있을 때 ‘모플린’을 껴안으면 기분이 전환되곤 해요.”
일본 도쿄에서 ‘반려 로봇’ 세 마리와 함께 사는 30대 직장인 여성 하루카 우토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토씨가 키우는 모플린 두 마리는 새끼 고양이만 한 크기의 펫 로봇으로, 각각 복슬복슬한 갈색 털과 회색 털로 뒤덮여 있다. 모플린은 우토씨의 말과 행동을 이해한 듯 고개를 흔들거나 소리를 내며 반응도 보인다. 나머지 한 마리도 펭귄 외형을 닮은 펫 로봇 ‘러보트’다.
최근 AI 펫 로봇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사람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한다. AI 기술을 활용해 살아 있는 반려동물에 가까운 반응을 구현하면서, 사용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셈이다. WEEKLY BIZ는 사람의 감정적 교감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AI 펫 로봇’ 시장을 들여다봤다.
◇로봇이지만 400만 가지 감정 표현
AI 펫 로봇의 소비층이 빠르게 넓어지는 배경에는 감정 인식과 반응 능력이 크게 향상된 점이 꼽힌다.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대(UNSW)의 로봇공학 전문가 벨린다 던스턴은 호주 ABC방송에 “최신 펫 로봇에 탑재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연산 능력이 크게 개선됐다”며 “보다 정교한 알고리즘을 실행할 수 있게 되면서 학습이 가능해졌고, 감정 표현도 훨씬 섬세해졌다”고 설명했다.
일본 전자제품 제조업체 카시오가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선보인 모플린은 사용자의 행동에 반응해 400만 가지가 넘는 감정 표현을 구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분이 좋을 때는 머리를 흔들고, 잠이 오면 웅크린 자세로 휴식을 취하는 식이다. 말을 자주 걸수록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반면, 관심이 줄어들면 내성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이 모플린만의 고유한 ‘성격’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스마트 동반자’ 내세워 가파른 성장
카시오는 모플린을 일종의 ‘스마트 동반자’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1인 가구와 고령자,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을 펼쳤고, 개당 429달러(약 62만원)에 이르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품절 사태를 빚었다. 이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 데스크톱 로봇 ‘이모’ 등 AI가 탑재된 다양한 펫·소셜 로봇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관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조사 기관 인사이드마켓리서치컨설팅(IMARC)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6억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소셜 로봇 시장은 2033년까지 425억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최대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로봇과 AI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활발한 데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문화적으로 관련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일본에서는 로봇을 동반자나 조력자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이미 자리 잡았다”며 “한국과 일본은 고령화로 인해 헬스케어와 노인 돌봄 분야에서 소셜 로봇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AI나 로봇에 대한 정서적 의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미국 캔자스대 심리학과의 옴리 길라트 교수는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이 줄어들면 사회적 체력과 사회적 기술이 함께 저하된다”며 “공감과 관계 형성을 기계에 외주 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