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 규모가 1000억달러에 도달하는 시점이 기존 예상보다 2년 앞당겨질 것으로 보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2028년 HBM의 시장 규모가 2024년 전체 D램 시장 규모보다 커진다는 점입니다. (마이크론은) 고객 맞춤형 HBM4를 통해 차별화 역량을 키우고 있으며, HBM (개발·출시) 로드맵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메모리는 이제 인공지능(AI) 인지 기능의 필수 요소이자 제품 성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 됐습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7일 열린 회계연도 2026년 1분기(지난 9~11월) 실적 발표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HBM이란 한 번에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초고성능·초고용량 메모리로, 그래픽처리장치(GPU)의 AI 연산에 꼭 필요한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앞서 마이크론은 HBM 시장이 2030년 1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올해 350억달러인 시장 규모가 연평균 40%씩 성장해 목표를 조기 달성할 것이라고 낙관한 셈이다. 단순히 상상에 기댄 예측이 아니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이날 HBM 수요 증가에 힘입어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매출과 주당순이익(EPS) 등 재무 성과를 보고했고, 내년도 HBM 공급 물량마저 이미 완판됐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삼성전자와 더불어 전 세계 ‘HBM 삼대장’으로 꼽힌다. WEEKLY BIZ는 마이크론의 1분기 실적 보고서와 실적 발표회 발언 등을 종합해 내년에도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계속될지 살펴봤다.
◇수요 폭증에 날아오른 실적
이날 공개된 마이크론의 1분기 실적은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마이크론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1분기 매출은 136억달러로 시장 전망치인 130억달러를 넘어섰을 뿐 아니라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7% 늘어났다.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EPS도 예상치(3.93달러)를 훌쩍 넘어선 4.78달러를 기록했다. 매출과 EPS 모두 사상 최고치다.
특히 마이크론은 이 같은 성과가 회사 사업 부문에서 고루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메흐로트라 CEO는 “이번 재무 성과는 공급이 빠듯한 환경 속에서도 모든 시장과 제품 분야에서 강력한 성과를 보여준 덕”이라며 “1분기에 회사는 전체 매출뿐 아니라 D램·낸드 매출, HBM과 데이터센터 매출 등 사업부별로 모두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했다. 마이크론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 D램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늘어난 108억달러를 기록했고, 같은 기간 낸드 매출은 22% 늘어난 27억달러에 달했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매출도 덩달아 급성장한 것이다. 마크 머피 마이크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D램과 낸드 부문 매출은 시장의 공급 부족, 가격 책정 전략의 성공과 유리한 제품 구성에 힘입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론은 내년에도 반도체 판매 호조가 안정적으로 이어질 것이란 확신을 드러냈다. 메흐로트라 CEO는 “2026년 2분기는 물론 회계연도 전체에 걸쳐 매출, 총마진, EPS, 잉여현금 흐름 모두에서 신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업계 수요는 강하고, 공급 제약으로 인한 물량 부족 현상은 2026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HBM 시장 우위 공고화
마이크론은 이날 자사 신제품인 HBM4를 내년부터 본격 양산해 시장 내 우위를 공고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메흐로트라 CEO는 현재 마이크론이 개발 중인 HBM4의 성능이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평하며 현재 판매 중인 HBM3E와 함께 시장 장악의 선봉장으로 삼겠다고 했다.
메흐로트라 CEO는 “(현재 판매 중인) HBM3E는 경쟁사 제품 대비 전력 소비량이 30% 낮은 등 데이터센터에 매우 중요한 저전력 성능을 갖추고 있다”며 “고객 수요에 맞춰 2분기부터는 HBM4의 생산량도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HBM4가 업계 최고 수준인 초당 11기가비트 이상의 성능을 보이는 데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제품 개발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HBM4의 수율 증가 속도는 HBM3E보다 더 빠를 것으로 예상되고, 두 제품은 2026년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마이크론은 이날 실적 보고에서 HBM 매출의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메흐로트라 CEO는 “HBM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2026년에는 전년 동기 대비 HBM 매출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투자 늘려 기술 혁신 이어간다
마이크론은 이날 최근 호실적이 기술적 우위 덕분이라며 기존 성공 공식대로 기술 혁신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메흐로트라 CEO는 “마이크론은 D램에서 4개, 낸드에서 3개의 연속적인 기술 노드(반도체 제조 공정의 세대를 나타내는 업계 용어)로 업계를 선도해 왔고, 모든 노드에서 더 빠른 수율 증가를 이뤄냈다”며 “2025년은 마이크론 고객 품질 데이터의 기록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이를 통해 메모리 업계의 품질 선두주자로서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고 본다”고 했다.
이날 마이크론은 수요 증가에 발맞춘 생산량 확대도 예고했다. 메흐로트라 CEO는 “마이크론은 2026년 D램과 낸드의 메모리 총용량이 2025년 대비 2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수요를 모두 충족하지 못한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생산 역량 강화와 공급 확대에도 불구하고 고객 수요를 모두 충족하긴 어렵다고 시사한 셈이다.
◇반도체 업계 낙관론 부상
이날 시장은 마이크론이 제시한 2분기 실적 전망에 환호했다. 마이크론은 2분기 매출 187억달러, 총이익률 68%로 내다봤고, EPS는 8.42달러로 예상했다. 만약 현실화된다면 이번 1분기 실적과 마찬가지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셈이다.
마이크론의 실적이 공개되자 외신과 투자 전문 매체 등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로이터는 “AI 수요 증가가 마이크론의 메모리 칩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며 “마이크론의 전망치를 보면 메모리 칩 가격이 공급 부족과 AI 데이터센터의 수요 증가로 급등하면서, 회사는 2분기 조정 순이익이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치의 두 배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투자 매체인 스톡스투트레이드는 “AI의 성장과 시장 수요 증가가 마이크론의 성장을 이끌고 있으며, 1분기 보고서에서 확인된 견고한 재무 기반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며 “마이크론의 긍정적인 지표들이 메모리 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고 했다.
마이크론이 사상 최고치에 달하는 실적을 내놓으면서 마이크론과 함께 HBM 삼대장으로 묶이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실적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마이크론 대비 국내 메모리 업체들의 주가 퍼포먼스가 약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다”며 “밸류에이션 역시 국내 업체들이 더 낮은 상황인 만큼 이를 비중 확대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