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쳄 엠사드 ASM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9일 경기도 화성 ASM 혁신제조센터에서 WEEKLY BIZ와 만나 대담을 나누고 있다. 그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역사상 가장 큰 호황기이자 동시에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장경식 기자

반도체 산업에서 진짜 힘은 누가 칩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없으면 안 되는 장비’를 쥐고 있느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에서 ‘수퍼을(乙)’로 불리는 기업들이 세계 반도체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하는 이유다. 네덜란드 장비 기업 ASM은 그 정점에 서 있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첨단 반도체 공정의 필수 기술인 원자층 증착(ALD·Atomic Layer Deposition) 분야에서 사실상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ALD 장비는 원자 단위의 얇은 박막을 형성해 칩 내부에서 절연층을 만들거나 전류 흐름의 정밀한 제어를 가능하게 한다.

이 ‘수퍼을’이 한국에 다시 한번 무게 중심을 실었다. ASM은 경기도 화성 동탄첨단산업단지에 혁신제조센터를 대규모 증축하고 조만간 가동을 앞두고 있다. ASM은 7400㎡(약 2200평) 부지에 1362억원을 투자해 지하 2층~지상 6층, 연면적 3만1500㎡ 규모로 제조 시설을 추가 확장했다. 이에 장비 연구 공간은 기존 시설 대비 2배, 제조 역량은 3배로 확대된다는 게 ASM 측 설명이다.

“새로운 센터에 제조 시설을 집중 배치하면서 기존 사옥은 차세대 연구·개발(R&D)에 전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물론 글로벌 고객사의 장비 수요까지 충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제조센터 준공을 기념해 최근 방한한 히쳄 엠사드 ASM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일 경기도 화성에서 WEEKLY BIZ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1위 기술력의 비결

-‘ASM’이란 이름에 담긴 의미는.

“ASM은 단순히 ALD 장비 업체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신소재를 발굴·개발하는 ‘소재 기업’으로 여긴다. 사명도 ‘첨단 반도체 소재(Advanced Semiconductor Materials)’라는 뜻이다. 창업자인 아서 델 프라도 회장은 1968년 회사를 세우며 ‘반도체 혁신의 핵심은 결국 소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고, 그런 철학을 사명 안에 담았다.”

그래픽=김의균

-ALD 장비 분야 세계 최고 기술력의 비결은.

“ASM은 두 가지 기술 변화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하나는 칩 성능 향상을 위해 구조와 아키텍처(설계 방식)를 최적화하는 ‘설계 기술 최적화(DTCO)’이고, 다른 하나는 신소재 적용을 전제로 한 ‘시스템 기술 최적화(STCO)’다. 과거엔 칩을 평면으로 배치하던 방식이었지만 최근엔 초고층 빌딩처럼 수직으로 쌓는 3D(차원)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공간 효율을 높이고 고(高)집적도를 구현할 수 있어서다. 다만 칩을 적층하려면 수차례의 증착 공정이 요구되며, 이 과정에서 칩 간 신호 전달을 위한 저(低)저항성 소재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박막이 필수적이다. ASM은 오랜 기간 신소재와 증착 기술 분야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반도체 소부장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네덜란드 저력의 원천은.

“네덜란드 반도체 산업은 학계·정부·산업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R&D 생태계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ASM 역시 에인트호번 공과대나 벨기에 반도체 연구소 아이멕(IMEC) 등과 협력해 혁신을 주도하고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반도체 기술의 기틀은 ASM 창립자이자 선구자인 델 프라도 회장과 유럽 전자 산업의 중심이었던 필립스가 닦았다. 델 프라도 회장은 1958년 미국의 실리콘 기술을 네덜란드에 처음 도입한 인물로, ASM은 물론 반도체 장비 업체인 BESI와 ASMPT의 탄생을 이끌었고 필립스가 1984년 ASML을 설립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러한 토대가 강력한 R&D 생태계와 결합하면서 네덜란드는 오늘날 반도체 혁신 국가로 자리 잡았다.”

◇반도체 산업의 현재와 미래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은 반도체 산업 역사상 가장 큰 호황기이자 동시에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본다. 반도체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미래 기술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반도체 산업이 전통적으로 호황과 조정이 반복되는 사이클을 거쳐왔다는 점에서, 향후 조정 국면이 찾아올 수는 있다. 다만 앞으로 나타날 조정 국면은 과거보다 기간이 점차 짧아질 가능성이 크다.”

-왜 조정이 짧아질 것으로 보나.

“과거에는 인터넷 등 일부 분야가 반도체 수요를 이끌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 재생에너지, 자동차 등으로 시장을 떠받치는 축이 크게 늘었다. 또한 각 산업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 종류도 다양해졌다. 예컨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확산으로 차량 한 대에만 수백 개의 칩이 탑재된다. 수요처가 이처럼 다변화되면서 향후 업황이 일시적으로 조정되더라도 하락 폭은 제한적이고 빠르게 회복되는 구조가 될 것이다.”

-칩을 둘러싼 미·중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나.

“지정학적 긴장은 공급망과 시장 접근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운다. 이에 반도체 산업에선 외부 요인과 관계없이 개발·생산·공급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강력한 지역 생태계와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전망은.

“AI로의 전환 과정에서 한국이 앞으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AI 기술은 크게 ‘생각하는 칩’인 로직과 ‘기억하는 칩’인 메모리로 나뉘는데, 로직 분야에서는 삼성전자가 확고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메모리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ASM은 이러한 한국 주요 고객사들과 차세대 기술과 반도체 개발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