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PB(자체 브랜드)로 탄생한 무인양품(無印良品·이하 무지)은 1983년 도쿄 아오야마에 103m²(약 31평) 규모의 첫 매장을 열었다. 그러곤 2025년 회계연도 기준(지난해 9월 1일~지난 8월 31일) 매출 7846억엔(약 7조4000억원), 경상이익 723억엔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기존 제품의 매출을 늘리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신제품 개발과 신시장 개척은 성장의 두 축이다. 무지의 신제품 개발 역사는 흥미롭다. 2001년엔 닛산과 함께 ‘무지 자동차’를 한정판으로 선보였고, 2004년부터는 무지의 철학을 담은 주택(‘나무의 집’ ‘햇빛의 집’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9년엔 긴자에 무지 호텔을 선보였다. 지하 1층, 지상 10층 건물의 6~10층을 사용한다. 같은 건물의 지하 1층엔 무지 식당이, 1~5층은 무지 매장이 있어 원래 건물명이 별도로 있지만 대부분 ‘긴자 무지 빌딩’이라 부른다.
신시장 개척에도 단계가 있다. 제품 수출, 생산 거점 건설, 매장 개설은 각각 동네 뒷산, 북한산,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무지의 해외 매출 비율은 40%에 달한다. 해외 매장 수는 729점포로 일본 내(683점포)보다 많다. 생산 거점이야 인건비, 정치적 민감도 등을 감안해 건설하면 되지만, 매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현지인의 관심을 끌고,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지 않고서는 견뎌낼 재간이 없다.
유럽, 북미 등 각 권역에서도 존재감을 키워 온 무지. 그중 유럽 최대인 무지 헬싱키 매장을 살펴보자. 무지는 2019년 11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무지 캄피 헬싱키(MUJI Kamppi Helsinki)’를 오픈했다. 면적은 3600㎡로 유럽 최대. 캄피 쇼핑센터 4층 한 층을 통째로 무지 매장으로 꾸몄다. 유럽의 여러 도시 중 굳이 핀란드에 유럽 최대의 매장을 꾸민 이유는 무엇일까. 무지는 2017년 북유럽 최대 인테리어·디자인 박람회에 초청돼 팝업을 운영해 보니, 핀란드에서 무지 브랜드에 대한 공감대가 비교적 높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이 매장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첫째, 핀란드란 나라의 특성을 매장 콘셉트에 적극 반영했다. 핀란드는 국토의 약 70%가 숲으로 덮여 있어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지는 인테리어에 목재를 많이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헬싱키 교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두막집의 구조를 참고한 기둥과 보를 설치해 현지 친화적인 매장을 꾸몄다.
둘째, 핀란드 지역 특산물과 제품을 활용했다. 식품 매장 및 이트인에서 제공하는 식재료는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 생산, 지역 소비)를 테마로, 약 100곳에 달하는 핀란드 현지 기업 및 농가에서 엄선했다. 셋째, 핀란드와 일본의 식(食)문화를 결합시켰다. ‘무지 라빈톨라(Muji Ravintola·라빈톨라는 핀란드어로 레스토랑을 의미)’라는 식당에서는 16유로 정도의 일본 가정식을 판매한다. 북유럽의 고물가에 비하면 가성비가 좋아서인지 꽤 많은 핀란드인들이 식사를 즐긴다. 핀란드인 셰프와 일본인 어드바이저가 협업해 ‘핀란드산 식자재에 기반한 일본 가정식’을 만들어 냈다.
압권은 일본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한쪽 편에서 비디오가 상영된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교토의 청수사를 보여주고, 곧이어 무지 교토 매장을 보여준다. 도쿄타워의 화려한 야경을 보여주고, 연이어 무지 도쿄 매장을 소개한다. 이처럼 일본의 주요 관광지와 그 지역의 매장을 보여주면서, 일본에 대한 긍정적 호기심을 높인다.
무지는 헬싱키 매장을 ‘공간의 현지화이자 공급의 현지화, 문화 서사를 수출하는 공간’으로 설계했다. 해외 진출을 말할 때 우리는 수출과 공장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승부는 ‘에베레스트’인 매장이다. 현지의 삶에 스며들지 못하면 결국 할인과 판촉으로 버틴다. 우리는 지금 어느 산을 오르고 있는지, 에베레스트를 오를 설계도와 체력이 준비되어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