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 피에트로 베카리 회장이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포즈를 취했다. 5층에서 4층으로 이어지는 아트리움(건물 중앙 홀)에 한지를 소재로 루이 비통의 로고 등 상징적 문양을 새긴 조명이 놓였다. /루이 비통

루이 비통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피에트로 베카리(58)는 명품 업계에서 ‘매출의 마법사’로 통한다. 2006년 프랑스 명품 그룹 LVMH(루이 비통 모엣 헤네시)의 루이 비통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으로 입사한 뒤, 2012~2017년 LVMH 산하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펜디 회장 겸 CEO를 맡아 브랜드 매출을 3배 이상 끌어올렸다.

2018년부터는 LVMH의 정신적 뿌리로 불리는 디올의 회장 겸 CEO로 옮겨, 팬데믹 충격 속에서도 2017년 22억유로(약 3조8000억원) 규모였던 매출을 2022년 88억유로로 성장시키며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공고히 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2023년 2월 LVMH의 핵심 브랜드이자 그룹 매출의 절대축을 담당하는 루이 비통의 CEO 자리에 올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미국 보그 등이 미래를 선도적으로 내다본다는 ‘비저너리(visionary·선각자) CEO’로 꼽는 그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우연인지 그에게 자주 붙는 ‘비저너리’란 수식어가 붙은 공간인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신세계 백화점 본관(더 리저브)에 문을 열었다. 전 세계 루이비통 매장 가운데 최대 규모다. 백화점 내부 6개 층에 걸쳐, 총 4892㎡(약 1480평) 규모에 미식·문화 체험형 공간·매장을 결합한 복합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번 오픈을 맞아 지난 3일 WEEKLY BIZ가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세계적 건축사무소 OMA의 파트너 시게마츠 쇼헤이가 4층과 5층에 걸쳐 설계한 문화 체험형 공간의 시작을 여는 ‘오리진(origins·기원)룸’. /루이 비통

◇“서울은 내게 행운의 도시”

-CEO 취임 직후 잠수교 패션쇼를 비롯해, 루이 비통 뷰티 글로벌 론칭 등 굵직한 행보를 보였다. 왜 이 시점에, 왜 서울인가.

“우선 서울은 내게 ‘행운의 도시’다. (디올 재직 당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서울에서 쇼(2022년)를 진행했는데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루이 비통 CEO가 되고 처음 결정한 것이 그 아름다운 다리, 잠수교에서의 패션쇼였다. 취임 두 달 뒤 열렸는데, 우리 팀에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한국은 루이 비통에 전 세계 톱5 중요 고객층에 해당하고, 서울은 매우 인기 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한국은 또 K팝 등으로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 아닌가. 루이 비통은 (한국과) 이러한 문화적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가 말한 ‘행운’은 타이밍과도 맞아떨어졌다. 인터뷰 전날, LVMH 그룹은 내년 1월 1일 자로 그를 LVMH 패션그룹 회장 겸 CEO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패션그룹은 셀린느·로에베·펜디·지방시·겐조 등 8개 브랜드를 거느린 핵심 사업군으로, 특히 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가 다수 포진해 있다.

-‘리테일테인먼트(retail-tainment·리테일+엔터테인먼트)’를 강조했다. 루이 비통이 말하는 리테일 전략은.

“럭셔리 산업이 제품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들 한다. 레스토랑, 박물관, 체험형 공간이 브랜드 가치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루이 비통이 럭셔리 산업의 리더인 만큼, 우리가 첫 번째로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더구나 그걸 한국에서 꼭 하고 싶었다.”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4층 문화 체혐형 공간의 협업(Collaboration)룸. 거방들이 회전장치에서 움직이면서 스크린에 투사되는 360도 전시 방식. 여러 협업작 중 사진은 박서보 선생과의 협업작 /루이 비통

-기존엔 단독 건물을 많이 지었는데, 이번엔 백화점 내부 입점을 택했다. 이유가 있나.

“한국은 백화점 문화가 굉장히 강하다. 그런 점에서 정유경 (신세계) 회장은 한국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일을 우리에게 맡길 만큼 매우 비전이 있는 리더다. 신세계는 우리 브랜드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원래 이 자리에는 15개의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철수하고 루이 비통 레스토랑만 남았다. 30개 넘는 다른 브랜드가 우리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리를 비워야 했다. 백화점은 한국 고객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굉장한 울림을 주고 유입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꿈’을 판매한다”

-4·5층 문화 체험 공간엔 루이 비통 역사에서부터 로봇 기술까지 대규모 전시장이 꾸며졌다. 게다가 모두 무료다. 이러한 비용이 손실로 느껴지지 않는가.

“‘잃는 돈’이 아니라 ‘투자된 돈’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브랜드를 이해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게 더 값진 투자라고 본다. 루이 비통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드레스가 없어도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꿈’을 판매한다. 사람들은 내게 종종 ‘당신에게 럭셔리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럭셔리는 꿈, 열정, 감정이다. 최고의 장인 또는 최고의 예술가가 최고의 소재로 만든 무언가를 보고 만질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바로 그 감정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우리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거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을 통해 삶을 조금 더 즐겁고,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4층 문화체험형 공간 뮤직 룸.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공간/루이 비통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지만, 그 필요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체험형 공간에 ‘저니(Journeys·여정)’란 이름을 붙인 것에도 이런 철학이 담겨 있나.

“호기심, 지적인 풍요로움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마음으로도 여행할 수 있고, 성장 과정에서 스스로 상상하지 못했던 존재로 변화해 갈 수도 있다.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라고 본다. 루이 비통엔 이러한 낙관주의의 개념이 담겨 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타인과 배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요즘처럼 세상이 때때로 슬프게 느껴지는 시대에는 이런 낙관주의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뢰받는 리더는 모두가 따라온다

중국의 장기간 럭셔리 소비 침체 등 명품 업계 업황이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진 않지만, 그 속에서도 ‘베카리 효과’는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 앞서 지난 6월 중국 상하이에 선보인 30m 높이의 배 모양 매장인 ‘더 루이(The Louis)’ 론칭 이후 성공적이라는 반응이다. LVMH는 지난 10월 성명을 통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추세가 “눈에 띄는 개선을 보였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이를 럭셔리 시장의 ‘부활 신호’로 해석한다.

-당신은 “실패는 끔찍한 맛이지만, 즉시 지워버린다. (라파엘 나달이 말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건 ’다음 공’”이라고 말해온 것으로 아는데.

“(펜디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가 제게 전해 준 가르침이다. 그는 매 쇼가 끝날 때마다 ‘좋아, 이건 끝났어. 이제 생각하지 말자. 다음 것으로 가자. 다음 것이 더 좋을 거야’라고 외쳤다. 쇼가 끝난다는 건, 미래를 생각하는 순간의 시작이었다. 당연히 내 머릿속에도 여러 다음 프로젝트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고 해도 당신의 경력에는 실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만약 팀이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팀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나.

“축구 선수 때부터 진 적이 왜 없겠는가. (그는 과거 이탈리아 파르마 지역 2부 리그에서 축구 선수로 뛰었다.) 중요한 건 ‘본보기가 되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팀 구성원에게 진심 어린 신뢰를 보이고 그들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이다.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은 사람들이 당신을 따라오도록 만드는 강력한 동기이기도 하다. 한 번 승리하면, 사람들은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훨씬 더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