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가인 12만6000달러를 넘기며 환호했던 비트코인 시장이 불과 한 달여 만에 8만달러 선까지 곤두박질친 이후 쉽사리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이 주춤하자 투자자들의 눈은 자연스레 전 세계 단일 기업 중 가장 많은 비트코인을 보유한 ‘비트코인 고래’ 스트래티지와 마이클 세일러 회장의 입에 쏠리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추가로 하락한다면 스트래티지가 휘청할 수 있고, 이것이 방아쇠가 돼 연쇄적으로 가상 화폐 시장 전체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공포가 월가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스트래티지는 지난 1일 긴급 기업 설명회(Company Update)와 경영진 팟캐스트를 통해 새로운 생존 전략을 발표했다. WEEKLY BIZ는 스트래티지가 내놓은 위기 극복 방안을 살펴봤다.
◇‘현금 방파제’ 구축
이날 스트래티지가 강조한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방안은 ‘달러 준비금’이었다. 스트래티지는 앞서 유상증자 등 주식시장을 통해 14억4000만달러(약 2조1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현금 보유가 아니다. 비트코인이 폭락해도 부채 이자나 우선주 배당을 지급하기 위해 보유 비트코인을 강제 매도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장치라는 설명이다.
퐁 리 최고경영자(CEO)는 “이 준비금은 우리의 우선주 배당금과 부채 이자를 갚는 주된 수단이 될 것”이라며 “현재 확보된 자금만으로도 향후 21개월간의 배당금과 이자를 모두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회사의 목표는 이 준비금을 더욱 늘려 최소 24개월 치 이상의 지급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세일러 회장은 이를 ‘배터리’에 비유했다. 비트코인이라는 강력하지만 변동성이 큰 ‘원자로’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달러 준비금이라는 배터리에 저장해 둠으로써 시장의 변동성과 관계없이 주주들에게 안정적인 수익(배당)을 공급하겠다는 논리다. 이는 시장의 공포인 마진콜(증거금 부족분 상환 요구) 우려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주목할 점은 이 자금의 조달 방식이다. 스트래티지는 회사의 mNAV(회사 시가총액을 보유 비트코인 가치로 나눈 지표)가 약 1.17배로 평가받는 시점에 주식을 팔아 이 자금을 마련했다.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도, 고평가된 주식을 활용해 현금을 쌓음으로써 주주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재무 건전성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비트코인 매도 금기 깨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이날 시장을 가장 놀라게 한 대목은 세일러 회장의 입에서 나온 “비트코인 매도 가능성”이었다. 그동안 “죽을 때까지 가져간다”며 매도 버튼을 없앤 것처럼 행동했던 그가 특정 조건하에서는 비트코인을 팔 수 있다는 조건부 매도 전략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세일러 회장은 팟캐스트에서 “mNAV가 1배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비트코인이나 비트코인 파생 상품을 매도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회사의 주식이 보유한 비트코인 가치보다 싸게 거래되는 구간에서는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기존 주주에게 손해(지분 희석)가 되기 때문이다. 이어 세일러는 “우리는 비트코인 상품 시장, 파생상품 시장, 주식 시장이라는 세 가지 엔진을 가지고 있다”며 “주식이 저평가일 때는 비트코인 시장을 활용하는 것이 주주에게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회사의 원칙을 설명한 이 발언은 양날의 검이 됐다. ‘무조건 보유’라는 그동안의 신뢰가 깨진 것으로 인식돼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사실 스트래티지가 비트코인을 처음 매입한 2020년 무렵부터 회사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는 사업적 이유로 비트코인을 매도할 수 있다는 문장이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안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며 이날 장중 주가는 최대 12.2%까지 폭락했다. 하지만 이것이 회사의 생존과 주주 가치 방어를 위한 지극히 합리적인 최후의 수단임이 시장에 인식되면서 주가는 낙폭을 만회, 3.3% 하락으로 마감했다.
◇연말 전망은 하향
스트래티지는 최근 폭락장의 현실을 인정하고 실적에 대한 눈높이는 대폭 낮췄다. 스트래티지는 당초 올해 연말 비트코인 가격을 15만달러로 예상했으나, 이번 발표에서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최근 가격 전망 평균인 8만5000~11만달러로 회사 전망치를 수정했다. 이에 회사의 실적 가이던스도 요동쳤다. 스트래티지는 연말 비트코인 가격이 8만5000달러에 머물 경우 약 55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11만달러까지 회복할 경우 63억달러의 흑자가 예상된다.
또한 핵심 성과 지표인 비트코인 수익률 목표치도 현실화했다. 기존에는 연간 30% 성장을 목표로 했으나, 이를 22~26%로 낮춰 잡았다. 리 CEO는 “하단인 22%는 주식 발행이 여의치 않아 현금을 보유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기 속 비트코인 추가 매수
흥미로운 점은 매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전망치를 낮추면서도, 그 이후에도 비트코인 매수를 지속한 것이다. 스트래티지는 설명회 당일인 지난 1일 비트코인 130개를 추가로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던 지난달 17일에도 8178개를 대거 사들인 것의 연장선이다. 세일러 회장은 “우리는 배당금을 지급하기 위해 소량의 비트코인을 팔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신용 상품을 판매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비트코인을 계속해서 사 모을 것”이라며 “순매수는 계속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방어를 위한 매도 옵션은 열어두되, 공격적인 비트코인 매집이라는 회사의 본질은 버리지 않겠다는 ‘투 트랙 전략’이다.
이 같은 행보는 8일 발표에서도 확인됐다. 스트래티지는 약 10억달러를 투입해 비트코인 1만624개를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회사의 총 비트코인 보유량은 66만여 개가 됐다. 이 같은 소식에 스트래티지의 주가는 전장보다 2.63% 상승 마감했고, 설명회 당일과 비교하면 7%가량 상승한 상황이다.
◇향후 분수령, MSCI 지수 잔류 여부
이제 시장의 눈은 다음 달 15일로 예정된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의 지수 편입 퇴출 결정에 쏠려 있다. 월가 일각에서는 스트래티지가 주요 주가지수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JP모건도 비트코인 단기 가격에 영향을 줄 핵심 변수로 스트래티지의 비트코인 매도 결정과 MSCI 지수 잔류 여부를 지목했다. 만약 MSCI 지수에서 제외된다면 최대 28억달러 규모의 자금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월가 분석가들은 스트래티지의 MSCI 제외 여부가 회사뿐 아니라 향후 비트코인과 가상 화폐 시장의 궤적을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회사가 이미 ‘현금 방파제’를 확보했고, 시장의 기대치가 조정된 만큼 설령 부정적 결과가 나오더라도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대로 MSCI 지수에 잔류할 경우, 이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JP모건은 “내년 1월 주요 MSCI 지수에 스트래티지가 잔류한다면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 전 수준을 회복하고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