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란 단어가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을 만큼, AI는 기업의 전략과 운영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BCG가 글로벌 15국 1800개 제조업체 경영진을 조사한 결과, 단지 16%만이 AI 목표를 달성했다고 답했다. 복잡한 공정, 불안정한 공급망, 숙련 인력의 손끝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제조업 특성상 AI를 규모 있게 도입해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력난과 비용 상승까지 겹치며 제조업은 지금 구조적 변곡점에 서 있다.
이 지점에서 주목받는 해법이 ‘피지컬 AI’다. 기존 AI가 디지털 공간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피지컬 AI는 현실 세계의 사물과 환경을 인식하고 추론하며 행동까지 수행하는 지능형 시스템이다. 자율주행차나 AI 로봇처럼 실제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최적화하는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과 BCG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피지컬 AI는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인간과 기계의 협업 방식을 바꾸고, 생산성과 품질, 회복탄력성을 동시에 높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이미 제조업의 공식을 다시 쓰고 있다.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공장을 보유한 폭스콘은 AI 로보틱스와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나사 조임과 케이블 삽입처럼 그동안 자동화가 어려웠던 고정밀 작업을 자동화했다. 그 결과 생산 배치 시간을 40% 줄이고 운영비를 15% 절감했다. 숙련 인력의 노하우를 AI가 학습해 재현하는 ‘미래형 AI 공장’으로 진화한 셈이다.
한국 제조업에도 이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인구 감소와 숙련 인력 부족,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피지컬 AI는 산업 체질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우선 단계적 도입 전략이 필요하다. 피지컬 AI는 하루아침에 모든 공정을 대체하지 못한다.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공정과 자동화는 당분간 공존할 것이다. 따라서 산업별 기술 성숙도와 특성을 고려해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다음은 데이터 자산화다. 강화 학습과 시뮬레이션 기술이 발전했더라도, 현장 데이터와 숙련자의 경험은 여전히 핵심 경쟁력이다. 기업은 피지컬 AI 구현에 필요한 데이터를 정의하고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품과 사업 모델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제조업은 하드웨어의 성능과 품질로 경쟁했지만, 피지컬 AI 시대에는 지능화된 제품과 이를 구현하는 소프트웨어·데이터, 자율화된 설루션과 서비스가 결합된 새로운 사업 모델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결국 피지컬 AI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과제다. 변화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기업만이 제조업에서 다시 초격차를 만들 수 있다. 한때 세계를 선도했던 한국 제조업은 이제 지능형 운영을 통해 경쟁력을 재정의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산업 전체가 ‘AI 공장 시대’의 골든타임을 붙잡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