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 노인이 표지판에 적힌 ‘90’이란 숫자를 가리키더니, 재주넘기를 하며 화면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그사이 숫자는 어느덧 90에서 0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잠시 암전됐던 화면이 밝아지자, 흑백 사진 속 한 아이가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합니다. 조금 전 얼굴을 비췄던 노인의 어린 시절입니다. 영상은 계속되며 그의 유년기, 청년 시절, 장년기를 차례로 재생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 장면이 나왔을 땐, 화면을 지켜보던 가족들이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이 영상 중 원래부터 동영상이었던 장면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90세 생일을 맞아,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훼손된 사진을 복원하고 움직임을 부여해 만든 것입니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이 영상은 흐릿해져 가던 어르신의 추억과 행복을 되살려준 ‘신개념 효도’로 일컬어지며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AI는 다방면에서 효를 실천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엔 챗GPT 등 AI에 기반해 동거하는 노인의 건강을 챙기거나 말벗을 해주는 돌봄 로봇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더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에 따르면 돌봄 로봇 시장은 지난해 61억8000만달러(약 9조원) 수준에서 올해 74억300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의료 분야에서도 ‘디지털 효도’는 건재합니다. 서울시는 어버이날인 지난 5월 8일 강북구 삼양동종합복지센터에서 ‘서울 AI 동행 버스’를 활용해 고령층이 AI 기술을 체험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날 어르신들은 AI 기반 충치 진단 장비로 치아 건강을 점검했고, 돌봄 로봇 ‘효돌’과 감정 인식 소셜 로봇과 맞춤형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지난 3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LG전자 AI 가전에 대한 리뷰를 분석한 결과, 가장 비중이 높았던 키워드는 ‘신뢰’와 ‘효도’였습니다. 노년층은 첨단 기술에 소외될 것이란 우려가 흔한 편이지만, 실제로는 AI가 어르신의 삶을 받쳐 주는 방향으로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