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자(Make America Wealthy Again)’ 무역 발표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한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

“그동안 업계에서는 수입업자들이 관세사를 얕잡아보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마치 별다른 전문성도 없이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들처럼 취급해 온 것이죠.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관세 중개 회사 ‘알바 휠즈 업 인터내셔널(Alba Wheels Up International)’의 창업자이자 31년 경력의 베테랑 관세사인 살바토레 스틸레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이렇게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안정적이던 미국의 관세 체계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도입으로 크게 흔들리자, 그동안 ‘통관 서류 작성인’ 정도로 여겨지던 관세사가 핵심 업무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바 휠즈 업 인터내셔널 뉴욕지사장인 케빈 솔라는 “고객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하루 문의 건수가 전년보다 400% 넘게 급증했다”고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리시전 비즈니스 인사이트도 통관 대행 시장 규모가 지난해 51억9930만달러에서 2031년 74억6350만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WEEKLY BIZ는 최근 관세 정책 급변이 미국 통관 업계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업무 폭증에…관세사 수수료 치솟아

미 관세·통관 규정이 복잡해지면서, 수입업체들이 부담하는 관세사 비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통관에 필요한 서류 검토, 국제상품분류체계(HTS) 코드 재분류, 원산지 검증 등 처리해야 할 절차가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 품목에 여러 관세가 중복으로 적용되는 ‘관세 스태킹(tariff stacking)’ 현상이 업무 부담을 키우고 있다. 예컨대, 기본 관세에 추가로 중국산 제품이란 이유로 301조 관세가 붙고, 여기에 반덤핑·상계 관세까지 더해지는 식이다. 이렇게 적용 대상과 세율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HTS 코드당 4~7달러 수준이던 수수료가 1~5달러 인상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정책 예고 기간마저 짧아졌다. 과거엔 관세 변경이 최소 몇 주 전 예고됐지만, 이제는 하루 단위로 규정이 바뀌면서 수수료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50%로 올리겠다고 깜짝 발표하자, 미 관세 당국은 시행 몇 시간 전에 황급히 공식 지침을 내놨다. 마이애미 관세사 랄프 데 라 로사는 로이터에 “관세사들은 대부분 사전 통관을 해두는데, 정책이 갑자기 바뀌면 제출한 서류를 다시 고쳐 소급 적용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물류 기업들, 관세사 대거 채용

관세·통관 업무가 복잡해지면서 글로벌 물류 기업들도 관세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숙련된 관세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DHL 글로벌 포워딩 아메리카의 팀 로버트슨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베테랑 관세사를 확보하기 위한 업계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며 “인재 부족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DHL은 최근 200여 명 규모의 관세사 채용을 시작했다. 채용된 인원은 향후 중소 수입 업체들의 통관 절차와 규정 준수 업무를 지원할 예정이다. 로버트슨 CEO는 “관세율이 거의 매일 바뀌고 있다”며 “이번 채용으로 대량 화물 운송 서비스의 역량을 40%가량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페덱스도 지난 6월 미국 내 관세·무역 관련 대응 인력을 대폭 확충하기 위해 자사 홈페이지에 40건이 넘는 채용 공고를 올렸고, UPS 역시 비슷한 직무를 채용하는 공고 10건을 게시했다. 페덱스 대변인은 로이터에 “변화하는 관세 환경에 맞춰 운영 체계를 조정하는 중이며, 관세사 인력 채용 확대도 그 일환 중 하나”라고 했다. 이 밖에도 글로벌 물류 기업들은 초급 인력을 관세사로 키우기 위한 사내 교육과 역량 개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관세 엔지니어링과 보세 창고도 인기

미 행정부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은 통관 업계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른바 ‘관세 엔지니어링’에 대한 기업 수요가 크게 늘면서 관세 중개 회사들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관세 엔지니어링은 제품의 설계나 구성 등을 바꿔 더 낮은 관세율이 매겨지는 품목으로 분류되도록 만드는 전략을 뜻한다. 예컨대 신발 브랜드 컨버스는 일부 스니커즈 운동화 밑창 부분의 절반 이상을 펠트(모직) 소재로 덧대는 전략을 썼다. 이런 식으로 제품을 ‘슬리퍼’로 분류되게 해 37.5%에 달하던 관세율을 3%까지 낮췄다.

보세 창고 수요도 치솟고 있다. 보세 창고는 수입 물품을 시장에 내놓거나 재수출하기 전까지 관세와 세금을 당장 납부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관세가 며칠 사이 급변하는 현 상황에서 기업들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셈이다. 트레이드 포스 멀티플라이어의 CEO이자 관세사인 신디 앨런은 “주문 당시만 해도 관세가 2.5%였는데 지금은 145%까지 뛰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기업들이 많다”며 “차라리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물건을 창고에 장기간 묵혀두겠다는 기업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포천에 말했다.